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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6월30일 수요일 11 (제174호) 독자마당 다산 정약용에 대한 공부를 하다 보면 어느 순 간 깜짝깜짝 놀라면서, 세상에 이런 일이 있기 도 했구나. 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이미 여러 차례 거론했던 이야기이지만, 정조대왕과 다산과의 관계가 신뢰하고 긴밀한 군신관계로 변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사건의 하 나가 바로 다산이 퇴계와 율곡의 학문을 평가한 내용으로부터 출발합니다. 1784년의 일이니 다 산은 23세, 얼마 전 성균관에 들어가 한창 공부 할 무렵, 소과에 합격한 성균관 학생 정약용을 불러 정조는 『중용(中庸)』에 대한 80여 조항을 주문하며 답변을 올리라고 했습니다. 이때 다산 은 남인이면서 남인 모두가 숭앙하던 퇴계의 학 설보다는 반대파이던 율곡의 학설이 바르다는 답변을 올렸습니다. 그러자 정조가 다산의 답안지를 읽고는 “그가 올린 강의내용은 일반 세속의 흐름을 벗어나 오 직 마음으로 이를 헤아렸으므로 견해가 명확할 뿐만 아니라 그의 공정한 마음도 귀하게 여길 만하니, 마땅히 이 답안을 일등으로 삼는다.”라 고 말하여 다산의 공심(公心)을 확인한 정조는 평생 다산을 가장 신임하는 신하로 여겼습니다. 뒤에 알고 보니 정조도 이에 사칠이기론(四七 理氣論)에서 「사칠속편(四七續篇)」이라는 논 문을 써서, 퇴계의 이론보다는 율곡의 이론이 옳다는 내용을 기술한 바가 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전에 전혀 아는 바 없었는 데, 정조의 이론에 다산이 동조한 입장이 되었 으니, 그 얼마나 다산에게 믿음을 주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요.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750-1805, 밀성 박 씨 충 헌 공 后 ) 는 북 학 파 의 거 장 연 암 박 지 원 ( 반 남 인 ) 의 제 자 로 『 북 학 의 ( 北 學 議 ) 』 라 는 명 저 를 저 술 한 북 학 파 의 큰 학 자 였 습 니 다 . 그 는 애 초 에 서 자 ( 庶 子 ) 로 태 어 났 지 만 정 조 의 서 얼 타 파 정 책 에 힘 입 어 이 덕 무 · 유 득 공 · 서 이 수 등 과 함 께 규 장 각 검 서 관 , 4 검 서 의 한 사 람 으 로 화 려 한 벼 슬 을 했 던 뛰 어 난 실 학 자 였 습 니 다 . 뒤 에 는 오 위 장 · 부 여 현 감 · 영 평 현 령 등 수 령 의 지 위 에 오 릅 니 다 . 그 는 본 디 소 북 ( 小 北 ) 계 열 의 출 신 이 었 지 만 연 암 의 제 자 가 되 면 서 노 론 북 학 파 에 속 했 던 학 자 였 습 니 다 . 정 통 남 인 출 신 이 던 다 산 과 는 여 러 가 지 로 함 께 어 울 릴 처 지 가 아 니 었 으 나 , 공 부 하 고 연 구 하 는 일 에 는 전 혀 거 리 낌 없 이 정 말 로 다 정 하 고 친 하 게 지 내 면 서 종 두 ( 種 痘 ) 를 예 방 하 고 치 료 하 는 방법을 공동연구 했던 기록이 있습니다. 두 사 람 모 두 당 파 나 진 영 논 리 와 는 전 혀 무 관 하 게 백성들의 생명을 살려 내 는 질 병 퇴 치 에 뜻 을 함 께 했 던 아 름 다 운 만 남 을 보 여 주 고 있 습 니 다 . 다 산 의 「 종 두 설 ( 種 痘 說 ) 」 이 라 는 글 에 는 그 들 두 사 람 이 지 혜 를 동 원 해 서 여 러 차 례 만 나 고 의 논 하 며 종 두 예 방 에 큰 업 적 을 이 룩 한 내 용 이 상 세 하 게 기 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당파와 진영논리에 갇혀서, 정 의, 공정, 진리 모두가 깡그리 매몰되고 있는 세 상에 살면서, 200년 전 다산과 초정의 공심(公 心)을 읽으면서 감동 어린 생각을 버릴 수가 없 습니다. 아무리 남의 당파가 싫고, 남의 진영이 밉더라도, 옳은 일, 바른 일에는 마음을 같이하 는 그런 세상은 오지 않을까요. 남 의 당 파 , 남 의 진 영 의 일 에 는 전 면 적 인 부 정 만 감 행 하 는 모 습 과 행 태 를 보 면 서 옛 날 어 른 들 의 넓 고 큰 마 음 에 생 각 을 기 울 이 지 않 을 수 없 습 니 다 . 남 인 들 의 무 서 운 비 방 을 무 릅 쓰 면서도, 율곡의 이론이 옳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 던 다 산 의 진 리 에 대 한 소 신 이 부 러 워 집 니 다. 당파를넘어선박제가와정약용 박석무 <다산연구소이사장> 스트레스의 상당부분은 본인 스스로가 만들어 낸다. 생각하는 방식이나 사물에 대한 집착 때문 에 생긴다. 문제는 스트레스의 상당 부분은 사소 한 것 때문에 생긴다는 사실이다. 내용상 별문 제도 아니고, 또 어찌 보면 문제가 아닐 수도 있 는데, 당사자는 심각하게 스트레스를 받고 괴로 워한다. 그런 점에서 리처드 칼슨의 [사소한 것 에 목숨 걸지 마라]는 참고할 만하다. 사람들은 대부분 하루에도 몇 번씩 자기의 생 각을 방어수단으로 사용한다. 자신이 희생양이 며 궁지에 몰렸다고 느낀다. 자신의 삶을 과잉 분석하고 주어진 책임을 지나치게 강조하며, 사 소한 것에 집착한다. 일의 경중을 제대로 파악 하지 못하고 작은 일을 과장해 생각함으로써 ' 생각의 공격'을 받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게다가 문제와 근심거리와 아직 확실하지도 않 은 결과들을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곱씹는다. 부 정적인 추측을 해대고 다른 사람의 행동에 의미 를 부여하느라 바쁘다. 과거라는 굴레에서 벗어 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전혀 의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생각들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사소한 것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자초하 고 있다. 천재불용(天才不用)이라는 말이 있다. 재주 가 덕을 이겨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부모들은 너 나 할 것 없 이 자 식 을 천 재 로 키우려고 한다. 하 지 만 세 상 에 나 가 훌 륭 한 사 람 이 되 는 것 은 천재가 아니라 덕이 있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머리로 세상을 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머리가 세상에 미치는 영향보다 가슴이 미치는 영향이 휠 씬 크 다 . 그 러 므 로 머 리 에 만 의 존 하 지 말 고 가 슴 으 로 세 상 을 살 도 록 가 르 쳐 야 한 다 . 가 슴 으 로 세 상 을 산 다 면 사 소 한 것 들 때 문 에 괴 로 워 하 고 스 트 레 스 받 는 일 이 훨 씬 덜 할 것 이 다. ‘생각의 공격’이라는 것은, 어떤 일을 당했을 때 부정적인 생각이 나를 괴롭히는 현상이다. 최 근 에 그 런 일 이 있 었 다 . 유 능 한 A 사 장 에 게 초 청 연 사 소 개 를 맡 겼 다 . 소 개 원 고 도 잘 되 었 는 데 , 마 이 크 앞 에 서 니 억 양 과 호 흡 도 서 툴 고 발 음 이 부 정 확 한 경 우 도 있 었 다 . 그 래 서 통 상 발 음 연 습 방 법 인 , 젓 가 락 입 에 물 고 발 음 연 습 좀 하라고 했더니 문자가 왔다. 자기에게 완벽 을 요 구 하 고 있 는 데 , 어 떻 게 완 벽 해 질 수 있 겠 느 냐 ? 그 건 우 리 조 직 이 경 직 되 어 있 다 는 증 거 다 ! 는 것 이 다 . 더 나 은 마 이 크 자 세 만 갖 추 면 정 말 좋 을 것 같 아 서 해 준 평 범 한 어 드 바 이 스 였 는 데 , 갖 고 있 는 사 고 방 식 때 문 에 생 각 의 공 격 을 받 아 스 스 로 스 트 레 스 를 자 초 한 것 이 다. 사람의 사고방식에는 세 가지가 있다. 주관적 사고방식, 객관적 사고방식, 분석적 사고방식이 다. 주관적 사고방식은 자기의 견해와 관점을 기초로 하는 사고방식이 며, 객관적 사고방식은 제3 자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 거나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다. 분석적 사고방식은 필 요성, 가치성,순수성, 성공 가능성 등을 분석하는 사 고 방 식 이 다 . 일 반 적 으 로 주관적 사고방식(35) + 객관적 사고방식(30) + 분석적 사고방식(35) = 성공적 사고방식(100 %)로 하여 결론을 내리면, 생각의 공격을 받지 않고 정확하게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성공적 사고방식이 필요한 이유는 냉철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기 위해서 다. 자기 주관성으로만 판단할 경우 위험부담이 매우 크다. 선입견, 4만(아만,오만,자만,교만), 3집(고집,아집,트집), 2욕(과욕,탐욕) 때문에 생각의 공격을 받기 쉽다. 또 다른 사람의 의견 만을 중시할 경우는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기에 자기를 잃어버릴 수 있다. 3단계로 의사결정을 하는 성공적 사고방식은 주관성으로 나의 의지 를 찾아내고, 객관성으로 다른 사람의 견해를 파악한 후, 추가로 필요성, 가치성, 성공가능성 등을 분석해서 종합적으로 결정하는 사고방식 이다. 사고방식을 성공적 사고방식으로 바꿔야 제대로 인지할 수 있다.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 보면서, 판단하기 전에 주관성과 객관성을 확인 하고 그 말이나 행동, 상황을 분석해보는 버릇 을 길러야 한다. 그렇게 하면 성공은 틀림없고, 조그마한 일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일도 적어진 다. 스트레스는‘생각의공격’을 받지 않아야븣 박승주전여성가족부차관 <세종로국정포럼이사장> 【公의 이름은 래윤(來允)이요 또 하나 의 이 름 은 윤 채 ( 允 彩 ) 이 고 자 ( 字 ) 는 집 중 ( 執 中 ) 이 며 난 정 ( 蘭 亭 ) 은 茂 長 鄕 校 에 서 지 어 준 아 호 이 다 . 그 의 선 조 는 密城大君이신 彦 을 본관 받은 조 상 으 로 삼 고 고 려 에 있 어 서 도 공 훈 이 빛 났 다 . 이 씨 조 정 에 들 어 선 후 대 호 군 衍 生 은 단 종 임 금 때 절 의 를 지 키 신 신 하 로 서 호 남 땅 담 양 고 을 월 산 마 을 에 내 려 와 아 호 를 遯 齋 라 하 시 고 본 관 을 泰 仁 으 로 고 치 셨 으 며 장 성 水 山 祠 에 모 시 었 다 . 그 의 玄 孫 되 는 守 溫 의 아호는 河南處士인데 經學이 높아 慶 基 殿 參 奉 으 로 천 거 되 었 고 그 의 손 자 되는 尙義의 아호는 栢友堂이신데 선 조 대 왕 임 진 년 난 리 에 이 름 을 온 세 상 에 떨 쳤 으 며 뒷 날 水 山 祠 에 배 향 되 었 다 . 그 의 아 들 允 鑑 은 인 조 대 왕 병 자 년 난 리 에 의 병 을 일 으 켰 고 그 의 아 들 行重, 아호는 梅軒處士인데 學行이 있 어 조정에서는 通政大夫 司僕寺正을 주 었 으 며 그 의 五 代 孫 인 德 豊 이 장 성 에 서 비 로 소 무 장 땅 으 로 들 어 가 셨 는 데 公 의 六 世 祖 되 는 분 이 다 . 萬 良 , 明 容 그리고 均仁과 誠求는 고조, 증조 그 리 고 할 아 버 지 와 아 버 님 의 이 름 인 데 모 두 가 학 덕 을 감 추 고 벼 슬 하 지 아 니 하 셨 으 며 어 머 니 는 김 해 김 씨 文 寶 의 딸 이 다 . 公 께 서 는 高 宗 乙 未 年 一 八 九 五 年 六 月 초 하 룻 날 무 장 정 거 리 본 집 에 서 출 생 하 였 는 데 타 고 난 자 품 이 高 明 하 고 모 습 이 씩 씩 하 여 무 게 가 있었다. 七歲 一九O一年에 스승에게 입 학 하 였 는 데 스 승 이 낱 낱 이 감 독 하 지 아 니 하 여 도 스 스 로 노 력 하 여 학 문 의 큰 뜻 을 대 략 알 았 으 며 집 안 이 심 히 가 난 하 여 父 母 님 을 봉 양 할 길 이 없 기 때 문 에 몸 소 농 기 구 를 잡 았 으 며 산 에 나 무 하 고 물 에 고 기 잡 는 수 고 까 지 도 맡 지 아 니 함 이 없 었 다 . 어 느 날 그 의 스 승 에 게 절 하 고 말 씀 하 기 를 孝 悌 는 인 간 의 근 본 인 것 이 며 문 장 과 예 술 이 란 끝 이 되 는 것 인 즉 문 학 에 만 전 력 하고 효도에 게을리 할진데 차라리 그 의 근 본 된 효 도 를 먼 저 하 고 그 의 끝 이 된 학 문 을 뒤 에 할 것 입 니 다 . 라 고 하 니 스 승 은 놀 란 표 정 을 지 으 며 칭 찬 하 였 다 . 아 버 지 , 어 머 니 초 상 을 당 하 여 표 정 과 실 천 하 는 예 법 은 모 두 극 진 하 여 털 끝 만 치 라 도 아 쉬 움 을 남 김 이 없 었 으 며 제 삿 날 이 면 미 리 마 음 과 몸 을 깨 끗 이 하 고 父 母 님 께 서 평 소 즐 겨 하 시 던 물 건 을 준 비 하 셨 으 며 이 슬 내 리 는 봄 과 서 리 내 리 는 가 을 의 절 서 마 다 반 드 시 선 조 님 들 의 무 덤 을 살 펴 보 고 청 소 하 였 다 . 만 년 에 착 한 아 들 을 얻 어 올 바 른 방 향 으 로 가 르 쳐 사 특 한 일 에 들 어 가 지 아 니 하 게 하 였 으 며 어 떤 사 람 들 이 죄 가 없 이 관 가 에 문 초 당 하 는 것 을 보 면 몸 소 대 변 하 여 그 로 하 여 금 재 화 를 면 해 주 었 다 . 노 년 기 에 거처하신 사랑방 옆에 정자를 지어 蘭 亭 이 라 현 판 하 였 는 데 향 교 元 老 이 신 吳均鎬선생은 松沙號譜에서 吳公 均 鎬 님 이 기 록 하 기 를 이 늙 은 이 는 비 록 시 대 를 만 나 지 못 하 여 진 실 로 곤 궁 한 생 활 을 하 고 있 지 만 그 의 심 덕 의 향 취 는 난 초 향 기 와 더 불 어 장 차 멀 리 퍼 뜨 릴 것 이 다 . 라 고 하 였 으 니 이 와 같 은 두 어 말 에 가 히 公 의 전 체 를 보 겠 다 . 庚子年 一九六O年 十一月 十八日에 운 명 하 였 고 묘 소 는 무 장 원 촌 앞 山 四 十 八 번 지 산 기 슭 子 坐 에 있 으 며 부 인 은 達 城 徐 敬 春 님 의 딸 인 데 부 인 의 덕 망 이 일 찍 이 알 려 져 무 장 향 교 유 림 에 게 포 양 문 을 받 았 다 . 한 아 들 은 용 철 인데 月城昔氏 順愛女士와 혼인하였 고 광 주 북 구 의 회 제 二 代 의 장 을 지 냈 다 . 손 자 는 창 욱 , 기 영 , 철 우 삼 형 제 요 두 손녀는 吉順과 晟僖이다. 아! 公의 극 진 한 효 성 에 어 버 이 는 기 뻐 하 였 고 아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가르쳐 입신 양 명 하 도 록 하 였 으 니 그 는 선 조 를 계 승 하 고 자 손 들 을 여 유 있 게 하 는 교 육 을 겸 했 다 고 하 겠 다 . 뿐 만 아 니 라 천 성 이 강 직 하 여 사 람 들 의 억 울 함 을 차 마 보 지 못 하 고 그 의 무 고 를 대 변 하 였 으 니 이 어 찌 씩 씩 한 장 부 의 기 백 이 아 니 겠 는 가 . 公 의 아 들 용 철 이 그 의 족 숙 되 는 래 호 를 소 개 하 여 나 에 게 묘 갈 명 을 청 하 는 데 나 는 래 호 와 나 이 를 잊 고 사 귄 친 구 이 다 . 어 찌 하 여 사 양 하 겠 는 가 . 그 리 하 여 銘 을 지 었 으 니 그 銘 에 이 르 기 를 公 은 효 도 에 독 실 하 였 으 니 근 본 을 세 워 바 른 길 이 생 겼 도 다 . 자 식 을 가 르 쳐 입 신 양 명 하 였 으 니 능 히 집 안 의 명 성 을 이 었 구 려 . 사 무 친 정 의 감 에 남 을 위 해 무 고 를 변 명 하 였 으 니 公 의 처 사 를 생 각 하 면 기 필 코 유 동 성 없 는 유 학 자 가 아 니 로 세 . 늦 게 살 림 살 이 쌓 았 으 니 아 ~ 맑 은 덕 화 는 난 초 와 향 기 를 함 께 하 였 네 . 큰 일 은 자 상 히 하 고 작 은 일 은 줄 였 으 며 허 화 를 버 리 고 사 실 을 취 택 했 다 오 . 내 가 한 말 아 첨 함 이 아 니 야 신 명 에 게 물 어 보소. 辛酉 一九八一年 羅州 羅鉀柱 삼가짓다. 蘭亭公의 비문 번역을 마치 고 변 경 또 는 누 락 된 기 록 과 孫 錄 은 다 음 과 같 다 . 移 葬 해 온 묘 소 는 광 주 광 역 시 광 산 구 송 산 동 山 十 二 의 一 번 지 요. 議長님의 孝行의 薦狀을 茂長鄕校 典校 成河潤님, 儒道會長 金相五님 등 의 찬 양 通 文 이 있 다 . 큰 손 자 昶 旭 은 문 영 란 과 혼 인 하 여 아 들 正 原 , 딸 羲 瑩과 希鎭을 낳았으며, 둘째 起永은 김 경 선 과 혼 인 하 여 아 들 珍 弘 과 亨 鎭 을 낳 았 고 , 셋 째 哲 佑 는 장 선 영 과 혼 인 하 여 아 들 璨 瑩 , 敏 晳 을 낳 았 다 는 것 을 추 가 기 록 한 다 . 辛 丑 二 O 二 一 년 二 월 宗 末 성 균 관 부 관 장 래 호 삼 가 기 록 하 고 , 음 四 월 二 十 六 일 아 들 북 구 의회의장 용철 삼가세우다.】 난정박윤채선생 묘비문 지난 4월 국회에서 현행 교육기본법 에 명시된 “홍익인간; (弘益人間)이념” 이란 용어를 삭제하고, “민주시민”을 강조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이 발의 되 어논란이일은적이있었다. 다 알다시피 “홍익인간 사상”은 고조 선의 통치이념으로 종교적 선언이었다. 다시 말하면 홍익인간 사상은 고조선의 지상선경(地上仙境) 건설의 이념이기 도 했다. 그래서 고조선 이래 오늘날까 지 수천 년 동안 우리 한민족의 영혼이 깃든 기본사상의 근간이 되어오고 있는 것이다. 1949년 대한민국 교육법 제정 이래 우리나라 교육이념의 핵심적 가치로손 꼽혀 오고 있는 골격이기도 하다. 그러 나 홍익인간이란 이 단어가 단지 추상 적이라는 이유를 들어 삭제한다고 하 면, 지난날 우리의 교육정책이 추상적 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자인(自認)하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기에 실소(失笑)를 금할수없다. 지난날 필자는 몇 차례에 걸쳐 본란 을 통해“홍익인간 이념”을 간략하게 소 개 설 명 한 바 있 지 만, 구체적인 개념 을 독자님들에게 전하는 데는 다소 미흡하다고 생각 되어 다시 한번 강 조해보는것이다. “ 홍 익 인 간 사 상”은 학자에 따라 그 해석이 다양하다. 어떤 학자는 홍익인간이란 정치적으로 다수 의사를존중하는 민주주의를 의미 하며, 경제적으로는 이용후생(利用厚 生)의 평등주의를 의미하며, 사회적으 로는 인화협동(人和協同)하는 정신이 라고도말한다. 또 어떤 학자는 기독교의 사랑, 불교 의 자비(慈悲), 유교의 인(仁)과 같고, 그 밖에 영국인의 생활철학인 최대다수 의 최대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功 利主義)사상 및 미국의 실용주위(實用 主義)사상과도 통한다고 한다.또 어떤 학자는 홍익인간 이념은 사익(私益)과 공익(公益)을 포함하는 이념으로 개인 주의적 투쟁과 전체주의적 투쟁을 지양 한협동형이라주장하기도한다. 자전(字典)에 의하면 홍익인간의 홍 (弘)자는 대(大)의 뜻이 다. 대(大)는 광(廣)·장(長)·심(甚)·과(過)·존(尊) 의 뜻이라고 설명한다. 광(廣)은 공간 적 개념이다. 제 민족의 나라만이 아니 라 다른 민족도 모두 포용하는 개념이 다 은혜를 베푼다면 세계의 모든 민족 과 국가에 은혜를 베풀어야 함을 의미 한다. 장(長)은 시간적 개념이다 즉 과거· 현재·미래를 연결하는 계속적인 은혜 를 베풀어야 함을 의미한다. 심(甚)은 질(質)적 개념이다 낡은 것이 아니라 새롭고 싱싱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은혜 베풀기를 하면 품질이 귀하고 우수한 것을 남에게 주는 것을 의미한다. 과(過)는 양적 뜻으로 부족함을 의미 하는 것이 아니고, 넉넉하게 남을 만족 하게 도와줌을 의미한다. 존(尊)은 도 덕적 개념으로 사리사욕과 권모술수가 아닌 사랑과 공경으로 진실·불기(不 欺)·무망(無妄)해야 하고, 국가 이익만 이 아니라 국제정의를 추구하여 타 민 족에게 불이익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익(益)자는 더하다·보태다·더욱의 뜻으로 홍(弘)의 廣·長·過·甚·尊을 더욱 강조한 뜻이다. 인(人)은 타인· 국민이라는 뜻과 아울러 황·흑·백·홍 인종 등 모든 인류를 의미한다. 그리 고 간(間)은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 단, 집단과 집단,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와의 관계 등 모던 인간관계를 의 미한다. 이상과 같이 자의(字義)에 의해서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의미를 풀어 보았다. 그 오묘한 의미는 실로 광범 위하고 위대하다. 이러한 의미를 터득 하지 못하고 겉핥기식, 추상적이라고 풀이 했으니 이야말로 자기의 무지함 을 스스로 드러낸 꼴이 아니고 무엇이 겠는가!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홍익인간 사 상”은 사회인화(社會人和)사상이며,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사이의 화합 을 추구하는 국제화합 사상이며, 개인 주의와전체주의,자본주의와공산주의 를 다 포용하는 개전(個全)일체 사상이 며, 나와 남을 포용하는 자타일여(自他 一如)사상이며, 은인과 원수까지도 다 포용하는 해원(解寃) 상생사상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홍익인간 사상은 추상적이 라 할 수 없으며, 학자들이 흔히 말하는 사 랑 · 자 비 · 인 ( 仁 ) · 경 천 ( 敬 天 ) · 숭 조 (崇祖)·애인(愛人) 사상은 물론 민본 주의·평등주의·공통선(共通善) 등을 다 포함하기 때문에 정치적 서로의 대 결이나 경제적으로 서로의 불평등이 있 을 수 없으며, 어떤 인종차별이나 국가 적으로 민족적으로 차별이 있을 수가 없는사상인것이다. 이상과 같은 심오(深奧)한 사상이 녹 아있는 홍익인간 사상은 한민족 본유 종교인 천교(天敎)의 종교적 이념으로 한민족 최초 국가였던 배달국(倍達國) 의 건국이념 이였으며, 이어서 단군조 선의 건국이념으로 전승되어 오늘날 까 지전해내려오고있다. 25시의 작가인 루마니아의 석학 게오 르규(1916-1992)는 “다시 일어나는 한 국”이 라는 글에서 21세기 태평양 시대 에는 한국의 홍익인간(弘益人間) 사상 이 세계를 지도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 을 했 다 . 1949년 제정된 우리 교육기본법에 나 오는 홍익인간은 어떤 국가와 사회, 인 간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오랜 시간 논 의 끝에 만들어진 총체적으로 한국인의 영혼이 깃든 인간상을 만듦에 있은 것 이다. 이를 단지 추상적이라 하여 “모든 시 민으로 하여금”으로 바꾸겠다는 발상 이야 말로 추상적인 발상이 아니냐고 되묻고 싶다. 이 발상을 두고 한국교총 등 교육계에서는 “1948년 대한민국 건 국 이래 70여 년간 우리 교육의 기본골 격을 만들어온 핵심 가치인 홍익인간사 상을 단지 추상적인 표현이란 이유만으 로삭제할수있느냐?”라고반발했다. 한빛의메아리 박 희 학 븣숭덕전前참봉 (29)홍익인간(弘益人間)사상은추상적개념아니다 뱚발뱞뱞행뱞뱞인:박순구 뱚취재편집:박상섭 뱚경영지원:박영일 기사제보븡광고신청븡구독안내 대표전화(053)588-7300 FAX(053)581-0067 뱚구독료년40,000 입금계좌:농협453013-55-000691 예금주:한빛신문 뱚뱜 42612 대구달서구달구벌대로1221(이곡동538-2)성창B/D5층 뱚뱜 본지는신문윤리강령및그실천요강을준수합니다 (2007년1월12일등록번호대구다-01225) 500만박씨성손의대변지 2007년1월24일창간(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