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page

2021년5월31일 월요일 5 (제173호) 관향조 종친회 흥왕사의 변으로 복주로 피난하는 공민왕을 호위하여 1등 공신에 오르고, 홍건적을 물리 치고 개경을 수복한 공으로 1등 공신에 각각 올라 공신각에 초상화를 걸었던 공민왕조의 벽상공신 박춘 선생의 춘향이 지난 1일(음3.2 0)봉행되었다. 이 날 제 향 은 전 날 부 터 내 린 비 로 인 해 단 소 에서 지내지 못하고 장손가의 재사(齋舍) 효 천재(孝泉齋)에서 코로나 19로 인해 필요 제 관만 참석한 가운 상섭 총무의 집례로 진규, 연규, 근호 현종 순으로 헌작하고 집례를 본 상섭 총무이사의 독축으로 이어졌다. 이후 진 설된 제물을 거두고 새롭게 진설하는 방식으 로 서석단에 모셔진 아들,손자와 증손 의재공 등4代5위의제향이이어졌다. 효천재(孝泉齋)는 좌상공 박춘 선생의 장손 가의 400여년 집성촌인 전남 곡성군 겸면 등 골마을에 소재하고 있어 이날 새벽 20대 종손 행순 과 상섭 총무 등이 서석단을 찾아 우천으 로 인해 부득이 효천재에서 봉행하는 고유를 올린바있다. 좌상공은 박춘은 내시중(內侍中)으로 수덕 궁을 증축하고, 시어사(侍御史) 재임시 무신 정변 후 폐주복위 사건을 빌미로 수많은 문신 들을 제거 할 때 이의방의 세력에 의해 살해된 휘 윤공(允恭)의 손자이고,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正言)을지낸상례(尙禮)의아들이다. 1300년 초 개경에서 태어났으며, 이재 백이 정 선생에게 수학하였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 고 재주가 많았으며 6세에 이르러 스스로 독 서를 즐기어 14세에 이재(彛齊) 백이정(白蓬 正) 선생에게 수학하여, 문장과 무예를 익히 어 원나라에 들어가 등제(登第)하고 한림학사 (翰林學士)가 되어 돌아와 익재 이재현(益齊 李齊賢) 목은 이색(牧隱 李穡)과 더불어 정주 (程朱)의 학설(學說)을 강론(講論)하였으며, 익재 선생의 천거로 공민왕조에입조(入朝)하 여 문신인 밀직제학을 지냈다.이후 계속된 홍 건적의 난으로 만호(萬戶), 나주목사, 응양군 상호군, 청주수원도병마사, 판밀직사사(判密 直司事), 우시중 등 문무를 넘나들며 공을 세 워 벽상공신에 오르기도 했으나 요승 신돈에 의해최영장군등과함께1차로화를입었다. 처음 광양으로 유배를 갔으나 1366년 8월 17 일(음) 신돈은 정적을 유배시키는 것을 넘어 머리를 깎아 울주군의 열암사(裂巖寺)에 유폐 했는데, 얼마 뒤에 수하 왕안덕(王安德)과 배 인길(裵仁吉) 보내 곤장을 쳐 죽이고, 바다에 수장(水葬)시키는 만행을 저질러 유해를 수습 하지 못했다. 이후 공민왕(20년)은 충신(忠 臣)의 안타까운 죽음을 추모하여 좌시중(追 左侍中)의 증직을 내리고 시호를 문정(謚 文 定)이라하였다. 이에 후손들은 광주 북구 화암동에 1976년 제단(서석단)을설치하고 제향을 받들어 왔으 나 세월을 이지 못하고 규제에 묶인 서석단은 보기 민망할 정도로 퇴락하였는데 2019년 어 렵게 인허가를 얻고 종원들의 성금으로 지난 해성대하게중수사업을마쳤다. 이번 중수사업에는 종원과 소문중 등 206명 이 참여하여 9천7백3십만원을 모금, 제반 경 비 등 총7천2백157천800원이 소요되고 2천5 백142천200원을 잉여금으로 일반회계에 이월 시켰다. 이에 대해 상섭 총무는 지난 달 27일 헌성비에 추가 새김을 마지막으로 모든 사업 이 종료되었다고 밝히고 성원해준 모든 분들 에게감사의인사를전했다. 한편 영배 대종회장은 이날 제향 후 그동안 총무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각종 사전과 인터 넷 포털사 이 트에 좌상공 할 아 버 님 에 대한 잘못된 문헌을 모두 바 로 잡 았 으 나 이 방 실 장군의 신도 비는 아직 좌상공 할아버님에 대한기록이 허 위로 날조되었다며 이를 바로잡는데 힘을 다 하자고말했다. 경기도 가평에 있는 이방실의 신도비는 비 리 혐의로 구속된 최근덕 前 성균관장이 지었 는데 ‘이방실이 박춘에 의해 살해되었다.’ 라 고 기술하고 있다. 이는 명백한 허위로 고려사 를 비롯 고려사열전에는 공민왕의 지시로 뷺박 춘이 도착하여 교지를 가지고 왔다고 하자 이 방실이 뜰로 내려와서 꿇어앉았다. 오인택이 칼을 빼어 내리치니 바로 엎어져 기절하였다 가 조 금 후 에 다 시 깨 어 나 서 담 을 넘 어 달 아 났 다. 박춘이 쫓아가 그를 잡으려고 하니 이방실 이 박춘의 칼을 뺏으려고 하였는데,정지상 등 이 뒤따라와 그를 쳐서 죽였다뷻라고 전해지고 있다. 고려벽상공신박춘선생추모제향 봉행 서석단 정비사업 마무리븣경기 가평 소재 이방실의 신도비(최근덕 撰) 올바로 잡아 주길 기대 서석단 전경,광주북구화암동360-4 효천재전경. 박영배회장 박행순胄孫 박진규초헌관 뱛박연규아헌관 박근호종헌관 가사문학의 선구자이며 임진왜란 때 수군으로 종 군. 해안지방의 만호(萬戶)를 역임한 노계 박인로 (朴仁老, 1561년~1642년) 선생의 충의(忠義)와 학 덕(學德)을 기리기 위한 추모제향이 지난 9일 영천 시 북안면 신평탑골길 93-57 도계서원(道溪書院) 입덕묘(入德廟)에서 지역 유림과 후손 등이 참례한 가운데봉행되었다. 이날 제향은 오전 10시 개좌를 열어 사전 천권(薦 券)이 발송된 오집사를 제외한 집사를 분정한 후 11 시 손병태(孫秉泰) 집례관의 창홀에 따라 박두환 (朴斗煥) 원장의 분향 및 강신, 전폐례, 초헌례에 이 어 윤장환(尹章煥) 차기원장이 아헌관으로 헌작하 였으며,이어 후손 박동만(朴東晩) 종헌관의 헌작하 고 박영철 축관의 독축으로 30여분에 걸쳐 진행되었 다. 도계서원은 1707년 노계 선생을 숭모하는 유생들 의 뜻을 모아 선생이 타계한지 65년 만에 도계사(道 溪祠)를 세워 향화를 받들며 선생이 높은 학덕과 충 의정신을 기려왔다. 그러나 창건 161년만인 1868년 대원군의서원철폐령에의해훼철되었다. 처음도계사가 세워진 곳은괘화마을(현 도천1리) 동북쪽 언덕 괴화마을이 보이는 풍덕산 중턱으로 현 재의 도계서원은 1970년 후손들의 정성으로 복설하 면서 지은 곳으로 서원강당은 전면 4칸의 비교적 규 모가 적은편이고, 강당 뒤에 사당인 입덕묘와 왼편 에 선생의 문집 판목(경북 유형문화재 제68호)이 보 관되어있다. 노계 선생은 조선시대를 양분하는 임진왜란 시기 에 1 1 편 의 가 사 (歌 詞 /歌 辭 )와 6 8 수 의 시 조 (時 調 ) 와 100여수의 한시(漢詩)를 남겼다. 그는 60여수 밖에 전해지지 않는 조선시대 가사 중에 11수를 남겼고, 그의 청빈한 삶과 결부돼 ‘가성(歌聖)’이라 일컬어 진다. 노계 선생은 송강 정철, 고산 윤선도와 더불어 한 국가사문학의 3대 시성으로 자는 덕옹(德翁), 호는 노계(盧溪)·무하옹(無何翁)이며, 본관은 밀양(密 陽)이고, 영천에서 출생하였으며, 어려서부터 시에 뛰어났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 병장 정세아(鄭世雅)의 휘하에서 별시위가 되어 왜 군을 무찔렀다. 이어 수군절도사 성윤문(成允文)에 게 발탁되어 그 막하로 종군하였고, 1598년 왜군이 퇴각할 당시 사졸(士卒)들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 가사 븮태평사븯(太平司)를 지었다. 이듬해인 1599년 무과에 급제하여, 수문장(守門將)·선전관을 지내고 이어 조라포(助羅浦) 수군만호로 부임하여 군사력 배양을 꾀하고 선정을 베풀어 선정비가 세워졌다. 뒤에 사직하 고,고향에 은 거하며 독서 와 시 작 ( 詩 作)에 전심하 여 많 은 걸 작 을 남겼으며 , 성 리 학 으 로 눈을 돌려 식 음을 전폐하 며 사 서 삼 경 ( 四 書 三 經 ) 으로 빠져 들 어갔다. 한 번은 성현(聖賢)의 기상을 묵상(默想)하 다 꿈 을 꾸 었 다 . 이 때 꿈 속 에 서 얻 은 성 ·경 · 충 ·효 (誠 ·敬·忠·孝)는 노계 사상의 요체로 이해되고 있다.노 계는이네글자를좌우명(座右銘)으로삼았다. 이후 한음 이덕형(李德馨) 등과 교류하며 ‘사제곡 (莎堤曲)’, ‘누항사(陋巷詞)’ 등을 지으며 말년을 보 냈다. 노계는 인조 13(1635)년 75세를 일기로 타계 (他界)했다.1630년(인조 8)노인직(老人職)으로 용 양위부호군이되었다. 선생이 남긴 중요한 작품으로는, 조홍시가, 누항 사, 선상탄, 사제곡, 영남가, 노계가, 입암별곡, 소유 정가,노계집등이있다. 도계서원춘향봉행 도계서원전경,①사당입덕묘 ②노계집판목각③강당④화장실 가사문학의선구자노계박인로선생학덕기려븣지역유림과후손등 노계 박인로 선생의 추모제향이 지난 9일 봉행된 가운데 박영 철축관(부산대명여고교사)이독축하고있다. 제향후 제관에게 음복상이 주어져 음복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동만,윤장환,박두환,박영철順 도계서원의 제의(祭儀)는 엄격하다. 정해진 절차에 의해 개좌를 열고, 사당에서 축관이 직접 사축을 한다.(사진 박영철 축관이 축 문을쓰고있다.) 밀성박씨충헌공파 경기도 고양 선조원당종중회는 지난 4월 9일 금 요 일 오 후 3 시 에 서 울 중 구 신 당동 407-11 아세아빌딩 본 종중 회 건물 5층 관리실에서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철저하게 지킨 가운 데 이사,감사 연석회의를 갖고 긴 급처리할현안을다루었다. 회의에 앞서 봉준회장은 인사 말을 통해 긴급 임시회의를 소집 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 가급적 빠 른 시 간 안 에 결 정 을 해 줄 것 을 당부하고회의를주재하였다. 봉준회장은 긴급 안건 하나하 나를 설명하며 그동안 임차인과 의 소송문제에 대한 결과를 설명 하고 긴급현안인 관할기관과의 행정다툼에 대한 대응문제를 의 논하고 건물 보수공사의 범위와 공사금액 등을 산정하기 위해 현 장을 직접답사한 후 3시간여의 토 론 끝에 집행부의 계획대로 추진 할 것을 의결하고 코로나19 방역 수칙대로 석식은 생략하기로 하 고회의를마치고해산하였다. /박봉준명예기자(경기고양시지부) 밀성박씨충헌공파경기도고양시원당종중회 긴급임시이사회개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