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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5월31일 월요일 11 (제173호) 독자마당 역대 숭덕전에서 발간한 “숭덕전사 (崇德殿史)” “성모(聖母)”조에 의하면 신라 시조왕을 탄강 하신 성모 파소씨 는 본시 중국의 진(秦)나라 제실녀(황 실녀)라고기록하고있다. 그러나 우리 한민족(韓民族)의 상고 사를 기록해 놓은 “환단고기(桓檀古 記) 태백일사 신라의 기원과 박혁거세 의 혈통(P616)”을 기록한 내용을 보면 신라시조 왕을 낳은 성모 파소씨는 중 국 진나라의 제실녀가 아니고 다음과 같이 우리 상고시대인 부여 황실의 딸 이라는사실을밝혀놓고있다. 『신라의 기원과 박혁거세의 혈통, 사 로(斯盧)의첫임금(박혁거세)은선도산 (仙桃山) 성모(聖母)의 아들이다. 옛적 에 부여 황 실의 딸 파소 (婆蘇)가 지 아비 없이잉태하여 남의 의심을 사게 되었다. 이에 눈수(嫩水)에서 도망하여 동옥저 에 이르 렀다 가 또 배를 타고 남 쪽으 로 내 려가 진한(辰韓)의 나을촌에 이르렀다, 그때에 소벌도리(蘇伐都利)라는 자가 이 소식을 듣고 가서 아이를 집에 데려다 길렀다.나이13세가되자뛰어나게총명하 고숙성하며성덕이있었다.이에진한6부 가함께받들어거세간(居世干)이되었다. 서라벌에 도읍을 세워 나라 이름을 진한 (辰韓)이라하였고,사로라고도하였다.』 북부여의 계보와 고주몽 혈통의 비사 (秘史) 고구려 900년 설과 광개토태왕 릉비에 보이는 광 개토태왕 17세손 의 진실은『환단고 기 』 를 통 해 서 만 알 수 있 다 . 해 모 수는 고주몽의 고 조 할 아 버 지 이 고 광개토태왕은 해 모수로부터 17세손이 되어 고구려 900 년설(북부여 역년181년+고구려 역년 7 26년)을입증한다. BCE109년 한(漢) 무제는 고조선(위 만정권)을 침입하여 요동을 넘어 왕검 성을 함락시키고 그 여세를 몰아 북부 여까지 침공하였다. 이때 분연히 의병 을 일으켜 한 나라 군대를 물리친 영웅 이 고두막한(高豆莫汗)이다. 그는 BC E108년 졸본에서 나라를 열어 “졸본부 여”라하고 스스로 동명왕이라 칭했다. 그는 고조선의 47세 고열단군의 직계 후손이다. BCE86년 그는“고두막단군”으로 즉 위하여 새 역사가 시작되었지만 아들(6 세 고무서) 대에서 182년의 짧은 부여 역사를끝내고고구려로계승되었다. 위의 부여의 세계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모후(母后) 인 파소(婆蘇)씨는 중국 황실의 딸이 아니고 부여 황실의 5세 고두막의 딸이 란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는 “환 단고기”가 처음으로 밝힌 획기적인 내 용이다. 그런데 종래에는 중국 사대주의 사관 (史 觀 ) 의 왜 곡 ·날 조 에 의 해 중 국 진 (秦)나라 사람들이 한반도로 들어와 신 라를 세운 것으로 잘못 인식돼 왔다. 중 국의 양서(梁書)신라기에는 신라의 선 계는 본래 진한종(辰韓種)인데,진(秦) 나라의 유광민이 한반도로 건너와 신라 전신(前身)인 중삼한(中三韓) 중의 진 한(辰韓)을건설하였다고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진한은 분명 고조선의 전삼한(前三韓) 중의 진한 (辰韓)을 말하는 것이다. 신라의 전신 인 “중삼한의 진한(辰韓)”을 세운 주체 세력을 단군조선의 진한유민이 아니라 중국 진(秦)나라의 유민으로 억지 부회 (附會)한것이다. 또“삼국유사” 감통(感通)에는 선도 산 신모(神母)는 원래 중국 황실(한나 라 8세 소제(昭帝)나 9세 선제(宣帝)의 딸이었는데, 이름은 사소(娑蘇)였다. (神母本中國帝室女 名娑蘇)라고 하였 고, 또 사소(娑蘇)가 중국에서 처음 진 한(辰韓)에 와서 박혁거세를 낳았다고 기록하여 파소(婆蘇)와 박혁거세의 혈 통을 중국 혈통으로 왜곡시켜 놓았다. (娑蘇와 婆蘇는 다름) 그러나 중국 사서에는 그런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환단고기의 “태백일사 고구려본기”에서 명확히 밝힌 바와 같 이 파소와 박혁거세의 혈통은 부여 황 실의 혈통이 분명한 것이다. 이러한 사 실은 “삼국사기와 신라본기”에서도, “이보다 먼저 조선의 유민이 이곳에 와 서 산골짜기에 흩어져 살면서 여섯 촌 락을 이루고 있었다.”라고 한데서도 명 확히밝히고있어알수있다. 그러므로, 신라를 건국한 주체 세력 은 고조선의 진한(辰韓)유민이다.중화 한족(漢族)의 주장을 입부 수용한다면 “진(秦)나라의 유망민”은 진시왕의 혹 독한 동이족 탄압 정책을 피해 한반도 로 건너와 경주 지방에 정착한 유민이 라 할 수 있다.그렇더라도 그들 역시 동 이조선족인것이다. 경주 서북쪽에 있는 선도산(仙桃山) 정산 9부 능선에 있는 성모사(聖母祠)는 신라 시대 창건되었고, 뒤편 바위에는 “성모유기(聖母遺基)”라는 네 글자가 새 겨져 있다. 지금도 매년 음력 3월 10일에 시조왕의후손들이향사를드리고있다. ※정정: 지난 4월 30일자(27호) 첫째 줄 25행 31행 중의 培達은→倍達로 정 정함. 한빛의메아리 박 희 학 븣숭덕전前참봉 (28)선도산성모파소씨(聖母婆蘇氏)는중국제실녀가아닌부여의황실녀이다. 뱚발뱞뱞행뱞뱞인:박순구 뱚취재편집:박상섭 뱚경영지원:박영일 기사제보븡광고신청븡구독안내 대표전화(053)588-7300 FAX(053)581-0067 뱚구독료년40,000 입금계좌:농협453013-55-000691 예금주:한빛신문 뱚뱜 42612 대구달서구달구벌대로1221(이곡동538-2)성창B/D5층 뱚뱜 본지는신문윤리강령및그실천요강을준수합니다 (2007년1월12일등록번호대구다-01225) 500만박씨성손의대변지 2007년1월24일창간(월간) 지난 28일(4월)에는 장성(長城)의 고산서원(高山書 院)에다녀왔습니다.본디는29일이음력3월18일의중 정(中丁)이어서그날가야했지만,코로나19라는무서 운 전염병으로 사람이 모일 수 없는 처지여서, 서원의 춘향(春享)을 모시지 못하고, 전날 미리 고유제(告由 祭)를 올리려고 하루 당겨 가야 했습니다. 고산서원은 세상에많이알려지지않은서원이어서간단한소개부 터하렵니다.서원은노사(蘆沙)기정진(奇正鎭:1798~18 79)선생을주벽(主壁)으로모시고,선생의뛰어난제자 여덟분을배향(配享)한대단한서원입니다.제자중에 는친손자로선생의학통을이은송사기우만(奇宇萬:18 46~1916)이 있습니다.한말의 큰 학자이자 을미사변 후 호남창의총수로활약했던의병장이었습니다. 기정진은 조선 후기 호남 최고의 성리학자이자 조선 성리학 6대가(六大家) 중의 한 분이면서 한 말 위정척사사상을 최초로 주창한 애국자였습니 다. 전라도 장성에서 거주하며 활동했던 학자였 으나 명성이 높아 전라도 이외 경상도에서도 많 은 제자들이 모여들어 거대한 ‘노사학단(蘆沙學 團)’을 이룬 당대의 대학자였습니다. 당시 산림 (山林)으로 천거되어 호조참판이라는 고관에 오 르고 사후에 문간(文簡)이라는 시호까지 하사받 은 뛰어난 학자였습니다. 저의 증조부 민재(敏齋: 朴琳相)공은 바로 송사 기우만선생의 친자(親 炙) 문인으로 의병에도 참여했던 학자였습니다. 그런 인연으로 저는 오래전부터 고산서원의 원장 이라는 과분한 책임을 맡아왔습니다. 그런 책임 때문에 큰 행사는 치르지 못하고, 간략한 고유제 로대신하기위해고산서원을방문했습니다. 노사는 다산보다 36년이나 뒤에 태어나 다산을 직접 만난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강진에서 유배 살던 다산의 저서는 필사되어 호남에는 더러 전 래 된 지역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민심서』를 노사가 읽을 수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철종 말년 전국에서 민란이 일어나자 나라에서 민란 방지와 삼정문란의 해결책을 올리라고 했습니다. 1862년의 일인데, 기정진은 삼정문란과 민심 수 습을 위한「임술의책(壬戌擬策)」이라는 대책문 을 작성했습니다.노사는 말 합니다.자신이앞전임금의 신하였던 정약용의『목민심 서』를 읽어보았는데 삼정문 란 의 해결 책이 그 책 속 에 들 어있다면서, 임금은 하루빨 리 그 책을 구해서 읽어보고 조정에 명하여 그대로 시행 하도록조치하라는건의서였습니다. 당대의 성리학자로서 당파가 다른 남인인 다산 과는 다른 생각을 지닐 수 있었는데 『목민심서』 의 가치를 크게 인정한 노사의 안목은 높기만 했 습니다.“백성들을괴롭히고병들게하는이유와나 라를 좀먹 게 하는 실제 내용 이 그 책 안 에 있 다.(則 其爲瘡於民 賊於國者 可得其實際矣)”라고 말하여 『목민심서』가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좀먹어가 는 나라 를 구 할 수 있 다는 주장 을 폈으 니, 노사 야말 로 다산의 실학사상을 국가가 실제 행정에 응용할 수 있기를 바랐던 최초의 학자가 아니었나라고 생 각하게됩니다. 날씨는 화창한봄날,큰제사는올리지 못했지만, 관계자 및 몇 사람과 함께 노사선생의 신위(神位) 앞에 청주(淸酒)한 잔 따라 올리고,고유제문을 낭 독하고공손하게재배(再拜)를올리며,오늘이라도 다산과 노사의 말씀에 따라, 『목민심서』를 제대로 활용하여 부패하고 타락한 이 나라를 바로잡을 수 있기만을간절히소망해보았습니다. 목민심서와노사기정진 박석무 <다산연구소이사장> 어떻게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일까? 인문학 의 기본 주제이기도 하다. 많은 성현들과 종교와 국가사회 지도자들이 이 주제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세계적인 종교저술가 미국의 “엘렌지 화 잇” 부인은 <교육>이라는 책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설명하고있다. “지상의생활은하늘생활의시작이요,지상의교 육은 하늘 원칙에 입문하는 것이며, 이생에서의 인 생활동은 내세에서의 인생활동을 위한 훈련이다. 품성과 거룩한 봉사에 있어서 우리의 현재 모습은 장차 우리가 이루게 될 확실한 그림자이다.비록 죄 때문에제한되어있을지라도 이 세상에 사는 우리 인생 최고의 기쁨과 최고 의교육은봉사에서얻어지는것이다.” 살아있는동안의지상생활과사후의하늘생활이 다르지 않기에 이생에서 좋은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것은하늘삶을위한훈련이라면서,교육은학생들에 게하늘원칙을가르쳐주는것이라고말하고있다.그 리고양심에어긋나는짓을하게되면그죄의식때문 에행동에제한이생기기마련이지만,봉사활동을하 면제약이풀려좋은삶을살수있다고봉사의중요성 을말하고있다.짧은문장이지만,봉사가살아가는방 법이라는것을확실히밝혀주고있다. 나라가 발전하려면 여러 측면에서 뛰어난 요인 들이 많아야 하지만,필자는 국민들의 民度가 가장 중요 한 변수라고 생각한다.정책 을 만드는 공무원의 마음과 자질은 국가사회 발전에 아 주 중요하다.공무원들이 똑 똑할수록, 문제의식이 많을 수록,국민을 사랑하는 마음 이 클수록 좋은 정책이 나온다. 그러면 어떻게 해 야 공무원과 관료들을 그렇게 되게 할 수 있 을 까 ? 국민들이 귀찮게 해야 한다. 반응과 응답을 쉬임 없이 해줘야 한다. 필자도 공무원을 30여년 했지 만, 국민들이 자꾸 문제를 제기해주고, 정책 아이 디어를 주고, 좋은 정책에 대해 반응을 보여주면 공무원들은 좋은 정책, 국민들 부자되고 잘 살게 하는 정책을 만들게 되어 있다. 그래서 공무원들 의 官度는 국민들의 民度가 좌우한다는 게 필자 의 생각이다.국회의원들은 어떨까?이 역시 마찬 가지라고 생각한다. 정치인의 治度도 국민들의 民度를 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인들이 좋 은 정치하게 만드는 것, 사랑으로 사람을 바로 잡 고 제도로 나라를 다스리는 仁政禮治를 제대로 하게 하려면 국민들이 자꾸 귀찮게 하여야 한다. 그래야治度가높아진다. 국민들의 民度는 어떻게 하면 높아질까? 두 가 지가 병행하여 발전해야 한다. 하나는 봉사(Serv e)이고 또 하나는 개선(Improve)이다. 국민들이 나 서서 사회경제적으로 나눔과 배려의 봉사활동 이 활발히 일어나게 하고, 정치행정적으로 제도 와 행태의 개선활동이 일상화되도록 유인해야 한다.라이온즈클럽은 우리는 봉사한다(WeServ e)를활동신조로하고있다.. 국민들이 모두 깨어나 있으면 공무원의 官度, 정치인의 治度, 대통령의 統度 모두가 국민을 최 고로 여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민들의 民度를 국민들에게만 맡겨서는 시간이 걸린다. 국가사회 적 지도자들이 앞장을 서도록 만들어야 하다. 선 거로 취임하는 공직지도자, 국회청문회 거치는 고위공직자, 국민경제 이끄는 대기업CEO, 국민 의 세금과 회원들의 공금으로 활동하는 공기업과 협회의 지도자들이 봉사활동(Serve)과 개선활동 (Improve)에 앞장 서도록 귀찮게 하고 반응을 보 여줘야 한다.특히 지금처럼 인구절벽시대,4차산 업혁명 인공지능시대에는 전세계적으로 변화가 급속히 오고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들의 미 래예측과 대응역량, 분석판단하고 결단하는 능 력, 조화소통하고 협력하는 능력, 옳고 그름을 분 별하는 의리지변 능력 등을 국민들은 선거와 청문 회, 소비 자 행동 에서 예리 하게 살 피고 , 그 들에 게 반 응을 보여주면서 그들의 사회를 위한 봉사활동과 개선활동을 이끌어 내야 한다. 국민들이 나서지 않 고 대통령의 哲統禮治의 統度에만 기대하거나 바 라만 봐서 는 안된 다. 국민 들은 노 력하 지 않으 려면 바라지도 마라야 한다. 국민들의 생각대로 그들이 움직 이게 하 려면 통 찰하 고 숙고 하여 방법 을 찾아 야한다.그들이제대로 안 하면 사랑의 매를 들어 야한다.愚公牛步라도 萬里滿山이다. 官度와治度와民度,그리고統度 박승주전여성가족부차관 <세종로국정포럼이사장> 제사는 우리 미풍양속으로 금년은 ‘코로나19’ 바이러스 전염으로 유림 및 종 회행사가취소또는축소시행되는사태가벌어졌다. 우리나라의 미덕 중 하나는 온 가족이 모여 조상에게 올리는 제사이다. 제사 음식을 잘 드시고 가족에게 복과 운을 내려 주십사 바란다. 큰 명절인 설날과 추 석날에는 먼 곳에 사는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인다. 이런 풍속이 수 천 년 간 지속 되는것도제사라는것이있어서가아닐까? 예서(禮書)에 의하면 세상을 다스리는 제왕(帝王)은 하늘에 제사지내고 한 지역을 다스리는 제후(諸侯)는 산천에 제사지내고 사대부(士大夫)는 조상에 제사지낸다고했다.사람은누구나자기를존재하게한근본인조상에보답해야 하는데 이는 부모와 조상을 극진한 정성과 공경으로 섬기는 일이다(報本之禮). 살아계신 동안 지성을 섬겨야 하며 돌아가신 후에도 결코 잊지 않는 것이 인간 의 도리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돌아가신 조상을 살아 계신 조상 섬기듯이 모시 는것(事死如事生)이효도이며이는제례를통하여행해지는것이다. 사대부의 제사는 자기 조상에 대한 의식이지만 성균관과 향교에서 봉행하는 석전(釋奠), 서원(書院)에서 향사(享祀)는 자기 조상을 넘어 세상에 공헌한 선 성(先聖)과선현(先賢)께올리는제례의식이다. 석전(釋奠)은 선성(先聖)과 선현(先賢)들의 학문과 인격과 덕행과 사상을 단순한이론으로만배우는것이아니라이를숭모하고존중히여기며스승을높 이하고진리를소중히여기는기풍을체득하기위하여거행하는의식이다.향사 는우리나라의선현의학문과덕을기리기위한의식이다. 서구 선진 문명이 들어오면서 제사 행위를 귀신에게 제물 바치는 무속행위로 보고 귀신을 부정하고 제사를 지내지 않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제사는 우리의 아름다운전통풍속이라고생각할수있다. 이 풍속을 이어간다는 것은 이 땅에 살아가는 우리들의 책무이기도 하다. 자 손들의제사참석은효제(孝悌,부모에대한효도와형제에대한우애)를높이고 가족 결속과 질서를 유지시키고, 사회 질서에 이바지하며 나아가 온 세계 질서 로확대될수있다. 제사는 또한 효와 덕을 부흥시킨다. 논어 학이편에서 “효제(孝悌)는 인(仁) 을 하는 근본이라(孝悌也自其爲仁之本與)”고 했다. 그리고 논어 이인편에서 “공자의도(道)는 충서(忠恕)일뿐이라(夫子之道忠恕而已矣)”고 했다. 공자의 도는인이며그실천은충서를통하여이뤄진다. 충(忠)은 가운데 중(中)과 마음 심(心)으로 자신을 닦는 수기(修己)이고, 서 (恕)는 같을 여(如)와 마음 심(心)으로 자기를 미루어 남에게 미친다는 안인 (安人)이다. 즉 충서란 자신이 수양에 힘써 자신을 속이지 않는 인격을 쌓고 그 것을미루어다른사람에게까지영향을준다(修己安人)는의미이다. 최근중국우한에서발생한코로나19바이러스의창궐로지난1월말부터지금까 지 몇 개월간 종교행사, 교육, 모임 등 여러 사람이 모이는 행사를 열지 않고 있다. 전통제례(祭禮)도거의간소하게봉행하거나연기또는취소하고있다. 이 전염병의 확산방지에 많은 사람들은 ‘나 자신이 감염되는 것보다는 내가 감염되어다른사람까지감염키면어쩌나’하는남을생각하는마음(安人)을가 지고 있다. 그렇지 않고 자기만 옳다고 하고 자기 주장만 고집하는 사람들은 남 을배려하기보다는자기욕심만채우려는마음(私意)이있다. 남에대한배려에소홀하고자기욕심만채우려는일부종교인들때문에?나라가 큰어려움에처하고있다. 제사는부모와형제에대한우애를쌓고, 앞서가신어진 선비를 공경하고 본 받고 자 함에 의미가 있다. 효제를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은 어진 사람이라고할수있다.어질음은바른마음(忠)과남을배려하는마음(恕)에서나 왔으니제사는우리의아름다운풍속이라고아니할수없다. /자료제공김용헌광산김씨판교공파종회상임고문 광산김씨대종회상임자문위원 ‘코로나19’사태가가져온엄중함 유림 및 종중 행사 취소 또는 축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