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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4월30일 금요일 4 (제172호) 관향조 종친회 신라만고 충신 관설당 박제상 선생의 추모제양이 지난 16일 오전11시 강원도 강릉시저동경양사에서있었다. 경양사의 제례는 강릉지역 유림의 연 례행사로 봉행되어왔으나 ‘코로나19’로 인해 대종회 행사로 치러진 가운데 치규 대종회장이 초헌관으로 헌작하고 이어 래균 고문(직전회장), 용승 판관공파종 회장이아헌과종헌관으로헌작하고,은 균축관의독축으로봉행되었다. 원로 고문인 용준 전 회장은 집례를 맡아 제례 과정을 설명하며 차분하게 진 행을 하여 이날 참석한 종원들에게 제의 (祭儀)에대해알려주기도했다. 경양사 제례에 이어 장소를 단천군사 공(휘 自儉) 묘역으로 옮겨 용준 전 회 장의 집례로 상권,원균,기원 현종이 차 례대로 헌작하고 은균 축관의 독축으로 선조에 대한 추원보본의 정성을 다했 다. 경양사는 대원군의 서원 훼철령으로 영해의 운계서원이 훼철되자 강릉박씨 종원들의 헌성으로 충열공 박제상 선생 의 영정을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하 여 일제 강점기인 1936년 건립되어 1977 년 11월 28일 강원도유형문화재 제59호 로지정되었다. 사우(祠宇)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이며,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양쪽에 바람을 막기위해 널빤지를 붙였 다. 솟을대문 좌우에는 방이 1칸씩 딸려 있으며, 내부에는 조선 숙종과 정조의 어제시(御製詩)가걸려있다. 단천군사공(휘 自儉) 1364년(공민왕 13년)에 태어나 태조원년(1392년)에 문 과에 올랐고 조선 세종 때 단천 군사(端 川 郡事) 겸 안렴사(按廉使)를 지내면 서 은혜로운 업적을 높이 평가하여 주민 들이 동비(銅碑)를 세워 기념하고 의주 (義州) 구암사에 배향되었으며, 단천공 이 아들 3형제를 두면서 번성하였고 조 선조에 들어와 문과급제자 7명을 배출, 그 후손들은 강릉의 각 지역으로 흩어져 각기 집성촌을 이루며 토호성씨로 자리 잡아오늘에이른다. /박용백명예기자(강원도강릉시지부) 강릉박씨대종회경양사및단천군사추모 제향 ‘코로나19’종중행사로전환 관설당박제상선생의위패가봉안된강릉의경양사제향이 지난 16일종친회주관으로 봉행되었다. 경북 의성군 가음면 양지리 소재 명곡 서원 춘향이 지난 9일(음 2월 下丁) 고 려 말 28은(隱)의 한분으로 고려 말~조 선 초에 왜구 정벌에 활약하여 이조참판 과 도총부부총관(都摠府副摠管) 등을 역임한 무신 박성양(朴成陽) 선생의 학 문과덕행을추모했다. 이날 제향은 이대석 유사를 비롯 경북 지역 유림으로 천거된 5집사와 본손 등 이 참례한 가운데 오전 10시 서원강당에 서 집사분정을 마치고, 의식에 따라 제 수가 차례대로 진설된 후 위패가 봉안된 사우 경덕사에서 정한식(영천, 延日后 人) 원장이 초헌관으로 헌작하고 이어 아헌관 이철기(영천, 碧珍后人) 종헌관 이창우(고령, 光山后人)씨가 각각 헌작 하고 축관은 곽재현(고령, 玄風后人), 집례 장세용(구미, 仁同后人), 집필 이 대석(성주,星州后人)유사가 각각 맡았 다. 제례 후에는 강당에서 강평과 함께 분 포례를 갖고 서원 발전 방향에 대해 의 논한 가운데 정한식 원장은 금은 선생의 높은 학덕과 충절을 후학들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 달라고 당부하였 으며, 본손 해율 유사는 어려운 여건에 서도 훌륭한 유학자분을 제관으로 모시 게 되 어 영 광 이 라 고 말 하 고 명 곡 서 원 이 더욱더 활성화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 다고말했다. 명곡서원은 무신 박성양(朴成陽) 선 생의학문과덕행을추모하고,지역민의 교육과 후진양성을 위해 순조 18년(181 8)에 창건되어 철종 2년(1851)에 사액 되었고, 고종 5년(1868)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고 그 뒤 1905년 명곡 서당으로 후학양성기관으로 운영되다 1 975년 명곡서당을 명곡서원으로 복원되 었다. 서원의 배치구성 및 건물 구성은 현존 조선후기 서원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강 학공간과 제향공간을 양분해 전학후묘 형(前學後廟型)을 취했다. 건물 구성은 먼저 제향공간에 사당인 경덕사(景德祠), 전사청(典祀廳), 사주 문 3동,강학공간에는 강당인 명교당(明 敎堂), 동재인 강의재(講義齋), 서재인 향도재(向道齋),외삼문인 유정문(由正 門)4동으로구성되어있다. 제향공간을 보면,강학공간 뒤편의 산 사면에 2단으로 터 닦고, 아랫단에 사주 문과 전사청을, 윗 단에는 사당인 경덕 사는 정면 3칸,측면 칸 반 규모에 튼 븮ㄷ 븯자형으로배치했다.윗아랫단사이에는 석축을 높게 쌓고 3줄의 출입용 계단을 설치했다. 경덕사에 배향된 금은 박성양 선생의 관향은 함양 호는 금은(琴隱), 시호는 정헌공(定憲公)이다. 상서공(휘 선)의 11세이고, 중시조는 금자광록대부 판삼 사사를 역임한 휘 지량(3파)의 후손으 로 아버지는 중랑장 휘 윤후(允厚)이다. 태조6년 5월에 왜구가 남해안에 침입하 여 백성이 어육을 당하고 있으니 조야 (朝野)에서공론이븮박성양은 문무를 겸 전한 용감한 인로서 왜적을 격퇴시키는 데는 가장 적절한 인물이오니 등용 하시 옵소서븯하고 천거하자 태조는 왜구 정 벌원수 로삼았다. 선생은 일신의 영을 위 한 소명은 거절하였으나 나라와 백성을 구휼하는 일이기에 흔쾌히 수락하 여 부산포로 달려가 60일 만에 왜적을 소탕하고 대 첩을 거둬 태조는 븮3자의 큰 칼로 사직을 안정시키 고 한줄기 채찍 끝으로 천하를 평정하였네.븯라며 어사시를하사하였다. 이후 광주목사, 우군절 제사, 우군동지총제, 이 조참판 겸 도총부부총관 을 역임하고 은퇴후 고향 으로 돌아와 제손들을 위 시하여 인재양성에 매진 하였으며, 고종 5년에 이 르러 자헌대부 이조판서 겸 성균관제주 오위도총 부도총관의 증직과 시호 를 정헌(定憲)이라고 함 께내려졌다. 한편 명곡서원은 2017 년 8월 1일자로 의성군문화유산 제37호 로지정되었으며,매년새해에는세알례 를 갖는 등 엄격한 규율, 그리고 예법을 중시한다. 명곡주원춘향봉행 ‘코로나19’엄격한예법에따라엄숙봉행븣유림과본손참례 명곡서원경덕사춘향이 2월下丁을맞은지난 9일봉행된가운데정한식원장이 초헌관으로 헌작 하고곽재현축관이 독축하고있다. 제향을마치고참례한제관이함께하고있다.(맨오른쪽본손유사해율) 명곡서원의모든의식은서원마당에서상읍례를시작으로 거행 된다. 서원강당에서집사분정을하고있다. 충과 효행으로 뛰어난 진재공 종 중은 지난 10일 전북 순창군 풍산면· 전남 곡성군 입면 만수리 선영에서 진재공 이하 13대(代) 32位(배위 포 함)의시향을봉행했다. 제향은 코로나19로 인해 오집사만 이 참석한 가운데 순창 진재공 설단 에서는 초헌관 종천(미생물학박사) 아헌관 행순(좌상공 20대사손), 종 헌관 상배 순으로 헌작하고 상섭 축 관이 독축하면서 엄숙하고도 차분하 게진행되었다. 순창 선영에 이어 장소를 옮겨 덕 천공 묘원의 제단에서 5대손 상배 (평택)가 초헌관으로 헌작하고, 이 어 5대손부 허현숙,최오남,6대손 신 현(에넥스 근무)이 각각 헌작하고 상섭이독축했다. 진재공은 고려벽상공신 박춘 선생 의 8世로 계모를 즐겁게 해드리기 위 해 계유(癸酉,1633) 식년시(式年試, 식년은 정기적인 과거시험)에 나이 67세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간 백형 고직당공을 대신하여 계모를 극진히 모시고, 학행으로 통덕랑에 올랐으 며, 증손 휘 난추(蘭秋)는 무신란에 의병을 일으켜 임금을 호종하여 가 선대부 동지충추부사에 가자되고, 이하 후손들은 효행이 뛰어나 통정 대부에 가자되는 등 충과 효를 실천 하는가문으로두각을나타냈다. 진재공의 10世 덕천공은 1860년 곡성 입면 지역에 기근(饑饉)으로 많은 주민들이 굶어 죽어갈 때 곳간 을 열어 구휼하고 쌀이 떨어지자 논 을 팔아 지역민을 살려내 당시 지방 수령과 아전, 토반 등 26人이 公에게 부역을 면제하고, 혹 어려운 일을 당 한다면 합심하여 도와준다는 完文을 작성 수결하여 발급한 문서가 전해 진다. 특히 公은 선비정신에서 비롯되는 높은 의리와 도덕, 그리고 오상(五 常)을 실천하였으니 후세에까지 그 음덕이고루비추어진다. 진재공의 후손들은 전북 순창에서 1729년경 무신란에 공헌한 중추부사 공(휘 난추)의 아들 휘 대업 공이 산 수 수려한 만수동(입면 만수리)에 이거하여 300여 성상, 지역의 토반으 로자리하고있다. 밀성박씨진재공종중춘향봉행 진재공이하13대(代) 전북순창·곡성입면선영 신라왕자 완산 대군의 춘향이 지 난 10일 신도비가 있는 전북 장수군 계남면 장안리에 서 박순영 회장을 비롯한 집행부 임 원만 참석한 가운 데봉행되었다. 전주박씨 추원 재 종종은 완산대군 제향후 다음날 추원 재 제향을 받들어 왔으나 ‘코로나19’ 방 역지침을 준수하기 위해 부득이 단일행 사로진행했다. 완산대군은 신라경명왕의 아들로 전 북 완산군(현 전주)지역을 식읍으로 하 여 세거를 이루면서 대대로 전주 지역을 터전으로세거하고있으며,대군의16세 효자 죽정공(휘 晋)의 효자 정려(旌閭) 와 묘소가 전주 교동과 완산구에 있다.1 500년경 죽정공의 장자 유성(有誠)의 후손들은 전북 남원,차자 효성(孝誠)의 후손들은 장수에 은둔하기에 이른다.연 산군의 폭정으로 당시의 많은 선비들이 출사(出仕)의 뜻을 접고 세속(世俗)을 등지며 심산유곡(深山幽谷)을 찾아 은 둔하면서 후학양성에 매진한 것 또한 장 수군 계남면으로 세거지를 정한 것과 무 관치않을듯하다. 완주에서 장수군 계남면의 최초 입향 지는 궁양리로 추정하나 장안리의 입향 은 상고할 수 없다. 궁양리는 계남면 소 재 지 에 서 장 안 리 로 진 입 하 는 초 입 에 있 으며 이곳에 완산대군의 27세 송암공 (松菴, 휘 재경)께서 지역의 자녀들을 교 육 하 기 위 해 세 운 근 수 루 가 있 어 이 를 뒷받침해준다. 계남면의 입향조는 완산대군의 21세 (世) 양성재(養性齋) 공(公)이다. 공 (公)의 휘는 삼윤(三胤)으로 인간의 타 고난 바탕과 성질 즉 천성(天性)을 길러 내는 데 주력하고자 자호(自號)한 것으 로 연산조의 혼탁한 정국을 피해 은거하 여 출사하지 않고 중종조에 생원으로 생 원공파라하여세계를이룬다. 생원공 후손들은 2009년 소요 예산 천 만 원 , 규 모 오 석 6 척 이 며 용 두 와 거 북 좌 대 로 총 높 이 3 .5 M 자 리 5 M 사 방 으 로 자 리를 잡아 완산대군신도비를 세우고 매 년 향사를 받들어 오며 선조의 음덕을 기리고있다. 추원재는 입향 400여년이 넘도록 조 상(祖上)을 숭모하는 재실(齋室)이 없 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던 중 대군의 35세 손 규현(珪鉉), 동현(東鉉), 수현(水 鉉), 태현(太鉉)과 순권(淳權) 등이 뜻 을 모아 1977년 3월 착공하여 후손들의 노력으로 그해 9월말에 준공하였으며, 입향조인 양성재공 이하 선조의 재숙소 로 사용하고 있다. 제례는 완산대군 제 향 다음날 입향조 양성재공은 묘소에서 제례를봉행하고 재실에서이하선조님 을 배향하고 있다. 완산대군 후예의 장 수 입향은 지역에 끼친 영향이 참으로 지대하다.지역의 유풍을 되살리고 후학 양성을위한선조의삶과사상은오롯이 애민과학풍진작에있다. 입향조 양성재공(휘 삼윤)은 중종조 의 생원으로 그의 아들 석령(碩齡)의 호 는 계동(溪東)으로 명종조에 생원으로 효행이 뛰어났다.손자 언상(彦祥)은 통 정대부,증손 호( 紫)는 선무랑으로 사옹 시주부이고 5대손 희채(喜采)의 호는 명와(明窩),행실이 돈독하고 학행이 뛰 어났으며 화양리에 지역 유지들과 함께 후학들의 교육의 장이 된 흥학당 건립에 아들 필승(必昇), 필성(必晟), 필화(必 華), 필순(必淳)과 손자 세한(世漢), 양 한(良漢), 삼종형제 양채(亮采), 응채 (應采)와 그들의 손자 종한(宗漢),조한 (祚漢),양한(良漢)등 13명이 동참하는 등 남다른 향학열을 보여주어 당시 장수 지역의 명현들과 함께하며 남긴 많은 기 록과유물이산재해있다. 숙종 43년(1717년 건립된 흥학당(興 學堂)은 계남면 화양리에 있으며 연안 송씨(延安宋氏)·남원양씨(南原梁氏)· 보성오씨(寶城吳氏)·문화유씨(文化柳 氏)·충주박씨(忠州朴氏)·전주최씨(全 州崔氏)·전주박씨(全州朴氏)·동래정 씨(東萊鄭氏)·금계한씨(錦溪韓氏)·안 음서문씨(安陰西門氏)·청주한씨(淸州 韓氏) 등 11성씨의 결사(結社)로 세워 진 강학의 장소이다. 계남면 궁양리의 근수루(近水樓)는 사인(士人) 오서규, 양하조,박재경(朴再絅,27世)등이 동지 (同志)들과 함께 강학(講學) 습례(習 禮) 한 곳으로 명와공(휘 희채)이 쓴 중 수기가걸려있다. 궁양리의 백인대(百忍臺)는 농은 박 계대(農隱 朴啓大,33世)통정대부 도정 을 지내시고 낙향선생이 서식했던 곳으 로 세이파정청심석백(洗耳波淨淸心石 白)의 8字가 새겨져 있다. 농은공은 청 빈한 선비로 생활하면서 맑은 물에 마음 과 얼굴을 씻으면서 백석과 같이 청정을 읊으시며 새겨놓은 글자의 뜻이 후세의 교훈으로이어져오고있다. 계남면 화음리 입구 도로변에 있는 벽 남정(碧南亭)은 지역의 선비 (박기복. 오일승 등)20인이 매년 춘추에 모여 교 류하던 장소로 주로 지기상부(志氣相 符)하여 애경상문(哀慶相問, 애경사에 서로 찾아보는 것은 우리 사회의 아름답 고 좋은 풍속)하던 곳이다.이밖에도 방 수대, 장안정, 선유정 등 강학을 목적으 로 세운 건물이있어 후진양성에 심혈을 기울인것을엿볼수있다. 또,대대로 이어오며 많은 명현석학을 배출하였으며 효자 열녀(열부), 덕행 (德行)과 유행(儒行), 선행(善行)으로 이름을떨친후손이수두룩하다. 완산대군·추원재춘향 ‘코로나19’임원진만참석단일행사로진행 전북 장수군장안리전주박씨유적과 전경 완산대군춘향이 지난 10일추원재옆신도비에 서임원진만 참석한 가운데봉행되었다. 박순영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