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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11월30일 월요일 11 (제167호) 독자마당 다산의 학문을 깊이 들여다보면, 역시 창의력이 뛰어난 학자였습니다. 유교를 국가통치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왕조에 서, 사서육경(四書六經)이 가장 중요한 교과서였습니다. 다산은 육경사서에 대 한 해석이 올바르지 못해서 2천 년 긴 밤 [長夜]이 계속되고 있다고 하면서, 경에 대한 올바른 해석을 그렇게 크게 강조하 였습니다. “경전의 뜻이 밝혀진 뒤라야 도의 실체가 드러나고,그 도를 얻은 뒤라 야 비로소 심술(心術)이 바르게 되고, 심 술이 바르게 된 뒤에야 덕을 이룰 수 있 다.그러므로 경학에 힘쓰지 않으면 안 된 다.(정수침에게 주는 글)”라고 말하며 경 전해석에일생을바쳤습니다. 유배 18년 동안 경전연구 232권의 방대 한 저술을 남겨,공자의 본뜻을 제대로 해 석해내고, 경학을 체계화했습니다. 『논 어』태백편에“민(民)은 (이치)에따르게 할 수 는 있 어 도 그 원 리 를 알 게 할 수 는 없는 것이다.(民可使由之 不可使知之)” 라는 경문이 있습니다. 많은 경학자들은 백성은 부려먹을 수는 있어도 이치의 소 이연(所以然)까지를 알게 해줄 수는 없 다고 해석하여 백성과 치자의 확연한 구 분으로이해하게만들고말았습니다. 여기에 다산은 왜 공자가 우민정책으 로 백성을 낮잡아보는일을말할수있었겠 느냐면서 공자가 말한 민(백성)은 모든 백성 이 아님을 밝혀냈습니다. 사(士)·농(農)·공 (工)·상(商)의 4민 중에서 사(士)를 제외한 전문직에종사하는사람들이야국가의통치 원리까지를 모두 알게 해줄 수 없는 것이라 는 뜻으로 해석하여, 민과 통치자가 계급으 로구별된다고했던말이아니라는내용입니 다. 그런 창의적인 해석으로 공자의 본뜻을 밝혀낸학자가다산이었습니다.『논어』양화 (陽貨)편에서는 “오직 여자와 소인만은 양 육하기어렵나니,가까이하면불손하고멀리 하면 원망한다.(唯女子與小人 爲難養也 近 之則不孫 遠之則怨)”라는 경문이 있습니다. 이거야말로 남존여비의 공자사상의 맹점으 로 여겨 모두의 비난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 다. 여자를 무시하는 나쁜 사상이라는 비난 이그치지않았습니다. 다산은 여기에서 참으로 창의적인 새로 운 해석을 내립니다. 여자(女子)에 대하여 모든 여성이 아니라는 해석으로 새 논리를 찾아냈습니다. 양(養)을 휵(畜)으로 해석 하여길러준다고여기고,여자나소인은일 반 여성이나 벼슬 못하는 소인으로 여기지 않고, 『주역』 돈(遯)괘를 인용하여 “휵신 첩 길(畜臣妾 吉)”(『 논어고금주』)처럼 공 자가 말한 여자와 소인은 신첩, 즉 남왈신 여왈첩(男曰臣 女曰妾)의 뜻을 원용하여 해석을내렸습니다.공자가말한여자와소 인은통상의여자나소인이아니라,하천의 노 예와 같은 교양 없고 인격 이 얕은 사람 을 뜻한다고한정해서풀이한것입니다. 일본의 어떤 작가도 여자와 소인은 “예 의범절과 배려의 미덕을 배우지 못하고 제멋대로 자란 사람은 진실한 인간관계 를 쌓 을 수 없 다 ”(나 가 오 타 케 시 , 『논 어 지어(論語之語)』, 유기영 역)라고 해석 했음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여자를 하대 하고 얕잡아보는 공자라고 그렇게 비난 받았는데 다산을 통해, 하천한 여인이나 교양 없는 소인은 다루기 어렵다는 뜻이 라고 했는데, 모든 여자는 기르기 어렵다 고 해석했으니, 경을 얼마나 잘못 해석하 여 긴긴 중세가 지속되게 했다는 것입니 다. 다산의 창의적인 경전해석이 얼마나 훌륭한가를 알게 해주는 내용입니다. 폐 첩(嬖妾)·시녀(侍女)·복어(僕御)·근습 (近習) 등 하천의 사람을 일반 사람과 구 별했음을 이해하면 공자의 말을 바르게 이해하게 됩니다. 공자는 절대로 여성을 하대하지않았습니다. ‘여자(女子)’를새롭게 해석한다산 박석무 <다산연구소이사장> 한국사회에서 ‘삶을 즐긴다’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도 대부분 이러저러한 이유로 삶의 무게에 치여 하루 하루버텨간다고말할것이다.어떤사람은 몸이 고달파서 그럴 것이고, 어떤 사람은 마음이아파서또는답답해서그럴것이다. 한국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희망 찬 미래로 가고 있는가? 지난날 한국은 세계에서 유례없는 경제성장과 민주화, 그리고 분배에 관한 성공사례로 간주 되 었다.그러나 지금은 세 가지의 도전에 직 면하고 있다. 하나는 짧은 시간에 폭발적 으로 국가경제를 확대시킨 압축적 성장 에 대한 비용을 아직도 지불하는 인문정 신의 빈약문제이고,또 하나는 4차산업혁 명과 인공지능 디지털문명 시대에 대한 준비와 대응문제이며, 세 번째는 한때 12 0만 명까지 되었던 출산율이 20만 명대로 떨어진인구절벽문제이다. 우리는세계10위권의국가로성장하는동 안 속도의 경쟁,효율성의 경쟁 속에서 많은 것을 유보하였다. 민주주의를 유보하였고, 인문정신을유보하였었다.그러다보니성장 의 대가로 예상보다 훨씬 오랫동안, 지금까 지도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정치대립이 심 각한데도 중재자로 나설만한 어른이 없고, 경제위기가다가오고있는데도처방을내는 경제학자는없다.사회 적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각해지고 있는데도 뚜렷한 정책적 처방이 보이지않는다.위험과 사고도 여전하다. 왜 그럴까? 왜 자꾸 반복 되는것일까?이는아직도속도와효율의경 쟁에서 벗어나지 못한 때문인 것 같다.시대 가문명사적대전환이라는,패러다임이바뀌 는 시대로 가고 있는데도 넓은 시야를 갖고 미래의비전을논의하는정치세력이보이지 않는다. 정치세력은 국가가 갖고 있는 인적 자본과물적자본을배분하는역할을담당하 기에미래를내다보고중장기적인안목을가 져야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공공선에 대한 사회의식이 결여되고 대충대충 임기응변식 으로대응하는것은국민에대한책임의식이 결여되었기때문이라고볼수밖에없다. 한국의 출산율은 인구유지 수준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OECD 국가 중 맨 아 래에있다.여성취업이활성화되었다는시 대적인 흐름도 있지만, 주택마련의 문제와 양육비 부담이 큰 장애물 변수임에는 분명 하다. 출산율의 저하는 경제활동인구의 감 소와산업기반의붕괴,그리고국가의잠재 성장율의저하와직결된다.산부인과,소아 과는 물론 아동의류 등 어린이관련 산업이 위축되고,더 나아가서는 생명보험과 연금 등의사회적인복지재원고갈도예상된다. 우리는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때 희망 을 보았고, 세계만방에 유감없이 대한민국 의 위대한 도약과 도전을 보여주었다. 5천 만 온 국민 이 신바 람이 났 고, 750만 세계 한 민족이대한민국과한몸,한마음이되었다. 대한민국이 지구상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몰 랐던 세계 사람 들이 대 한민 국이 일본 보 다 더 뛰어난 나라임을 알게 되었다. 32개 출전국중 4개팀만 가능한 4강에 대한민국 이 당당히 포함되었다. 당시 행정자치부가 붉은악마신인철회장,사물놀이김덕수단 장과 거버넌스하여 경기외적인 한국팀 필 승전략을 수립하고 실천하였기 때문이었 다.지금도우리대한민국은창의성을발휘 하 면 희 망을 갖고 꿈을 이룰 수 있 는 방 법 이 많 다. U튜브를 비롯한 디지털문명의 발달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그래 서 국가는 모든 사람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방향으로 가게 해줘야 한다. 사회적 불평등 과 양극화를 조금이라도 완화하는 정책, 옳 고그름을분별하는,義利之辨하자는사회적 캠페인,손안의핸드컴인스마트폰으로일을 하는스마트폰프리젠테이션,스마트폰컨퍼 런스, 스마트폰 스터딩 등 디지털문명을 내 것으로만들자는캠페인과정책이필요하다. 스마트폰을사용하면떨어져사는손자들과 문자와사진주고받는소통을할수있고,스 마트폰으로 검색하면 찾지 못하는 것이 없 다.회사에서회의맴버들이소관사항을스마 트폰으로프리젠테이션하면역량이한단계 업그레이드 된다.세계 모든 자료를 내 것으 로만들어바로활용할수도있다. 디지털문명시대,스마트폰활용해미래로가자 박승주전여성가족부차관 <세종로국정포럼이사장> 역사 는 우 리 인 간이 대 자연 속에 서 무 엇인가를 이루고자 꿈을 안고 살아가는 인간 삶의 발자취를 기록해 놓은 총체를 일컫는다. 그래서 역사는 과거의 일어난 진 실을 탐구 하는 것 을 원 칙으 로 하 는 것 이지만 이것이 역사는전부는 아니다.지 난 과거사의 역사적 의미를 찾아내어 현 재 삶 을 향상 시킬 최 선책 을 찾 는 것이 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읽게 하 되 어 릴 때 부터 읽 게 할 것 이며 , 역사 를 배 우되 늙어 죽 을 때까 지 배 우게 할 것 이 며 남녀를 구분치 말 것이며, 지배계급 뿐 만아 니라 피 지배 계 급도 배우 게 할 것 이 다”라고 외 쳤다 . 그가 말 하는 역사 는 국가와 민족을 소생시키고 인류의 참된 소명을 깨닳게 하는 븮정신이 살아 있는 역사븯이다. “정신이 없는 역사는 정신이 없는 민 족을 낳고, 정신이 없는 나라를 만든다” 라고절규하였다.그래서 역사는 인간 정 신 활동의 결과물이요 산물이다. 그러므 로 역사는 인류의 삶에 필요한 제1의 자산이자 지혜의 보고가된다. 우리가 역사를 반드시 알아야 하 는 이유는 오늘의 우리 삶이 과거 역 사에 바탕을두며,지금우리의발걸음에 따라 미래의 향방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과거 가 단절 되고 왜곡 되어 있 으면 과거 의 소산인 현재의 역사의식도 뒤틀리고 미래 를 보는 올바 른 시각 도 가질 수 없 다. “과거는 죽은 과거가 아니라 아직도 현 재 속에 살아 있는 과 거”이고 “역 사란 과 거와 현 재의 끓임 없 는 대화 ” 인 것 이다 . 과거와 현재가 서로 소통될 때 비로 소 우 리 에 게 닥 쳐 오 는 모 든 변 혁 에 대 비하고 밝은 미래를 열수 있다. 미래를 구 축 할 수 있 는 힘 은 바 로 역 사 에 서 나 오는 것이다.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 것 은 자식을 낳아 놓고서 성(姓)을 가르 쳐주지않는것과다를바없는것이다. 오늘날 우리 민족의 모습은 우리의 시원(始原)역사와 문화 를 스스로 잃어 버리고 사는 혼 빠진 민족으로 전락해 버렸다. 학교교육에서도 국사를 필수 과목이 아닌 선택과목으로 하여대학시 험에서도 이를 배제하고 있는 것이 이 를 증 명 하 고 있 다 . 우리 한국사가 이렇게 망가지고 파괴 된 데는 여러 가지 문제가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그 중에서도 한국사 상실의 핵심 요인인 우리 사서(史書)의 잘못된 기록과 중국과 일본에 의한 한국사 왜 곡에서찾을수있다. 지금 남아있는 우리나라 역사서로는 학계에서 인정하고 가르치는 대표적인 사서는 “삼국사기” 와 “삼국유사”이다. 삼국사기는 1145년(고려인종23)에 김 부식이 왕명을 받아 편찬한 책으로 삼 국사기를 기록한 정사로 인정받는다. 김부식은 고려 중기의 유학자로중화주 의와 사대주의 사관을 바탕으로 “삼국 사기”를 편찬했다. 그렇기 때문에 북방 을 다스리며 중국을 제압하던 고구려를 진한(秦漢)이후로 중국 동북 모퉁이에 끼여 있었던 나라로 정의하고 중국의 국경을 침범하여 중국을 한민족의 원수 로만든적대국으로표현하였다. 뿐 만 아니 라 신 라 귀 족의 후 손인 김부 식은 멸망된 신라를 한국사의 정통 계승 자로 만들기 위해 신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발해(대진:大震)의 역사를 단 한 줄 도 기록하지 않았다.이처럼 발해 역사를 기록하지 않은 사실을 두고 신채호는 “동북 양 부 여사 를 빼 버 려 조선 문 화의 근 원을 진 흙 속 에 묻어 버 리고 , 발해 를 버 려서 삼국 이래 결정 (結晶)된 문명 을 짚더미에내던져버렸다.”고통탄했다. 신채호의 말 그대로 김부식은 한민족 의 상 고 역 사 를 한 반 도 에 국 한 된 반 토 막 역사로 축소시켜 버린 인물이다. 고 조선과 부여를 비롯한 상고사에 대해서 는 한마디 언급도 없이 삼국시대만을 기록한 사서가 어찌 한국을 대표하는 사서가될수있겠는가? 1281년 (고려 충렬왕7)경에 승려 일 연(一然)이 편찬한 삼국유사는 저자 개 인의 관점에서 자유로운 형식으로 기술 한 야사(野史)의 성격을 띠고 있는데, 고조선에서 신라 말까지의 역사를 기록 한 제 1권과 2권을 기이(紀異)편이라 이름을 붙여 버렸다. 이는 신이(神異) 한 것을 기록한다는 뜻으로, 일반적인 사서와는 달리 “삼국유사”는 각 왕조사 를 그 흥망성쇠와 관련된 신화와 전설 에 비중을 두어 기록했다. 이 기록은 다 음과같은문제점을안고있다. 첫째 고조선의 7천년에 달하는 우리 상고사(환국·배달·고조선)를 환인·환 웅·단군 3대에 걸친 인물사로 잘못 기 록하였다. 둘째 배달의 백성으로 귀화 하고자 한 두 부족인 웅족(熊族)과 호 족(虎族)을 사람이 되기를 갈망한 두 마리 동물로 묘사해 버렸다. 셋째 마흔 일곱분 단군이 다스린 고조선을 단 한 명의 단군이 다스린 것으로 오기하였 고, 그 단군왕검도 산인이 되었다고 하 여 고조선 역사 전체를 신화 속의 이야 기로만들어버렸다. 더구나 삼국유사는 불교사관으로 덧 칠되어 일연은 인류 문명의 최초의 나 라인 환국을 불교 신화 속에 나라로 변 절시켜 버렸다. 그런데 우리의 옛 사서 들이 다 사라지고 븮삼국사기븯와 븮삼국유 사븯만 한국의 대표 사서로 남게 되었는 가? 이다. 당시의 김부식과 일연 두 사 람은 븮삼국사기븯와 븮삼국유사븯를 저술하 면서 당시 까지 남아 있던 유교사관과 불교사관에 위배되는 문헌은 모두 배제 하였고, 조선을 무너뜨린 일제의 식민 정책은 이 두 사서를 한국의 대표 사서 로굳히는요인이되었다. 한빛의메아리 박 희 학 븣숭덕전前참봉 (22)고대역사와문화를잃어버린한민족 뱚발뱞뱞행뱞뱞인:박순구 뱚취재편집:박상섭 뱚경영지원:박영일 기사제보븡광고신청븡구독안내 대표전화(053)588-7300 FAX(053)581-0067 뱚구독료년40,000 입금계좌:농협453013-55-000691 예금주:한빛신문 뱚뱜 42612 대구달서구달구벌대로1221(이곡동538-2)성창B/D5층 뱚뱜 본지는신문윤리강령및그실천요강을준수합니다 (2007년1월12일등록번호대구다-01225) 500만박씨성손의대변지 2007년1월24일창간(월간) 겨울이 시작 한다는 입동(立冬)에 맞춰 전국 기온 이 떨어진다. 입동에는 김장을 하고 소에게 먹일 여울 도 준비하며 기나긴 겨울을 준비하는 날이다. 그러나 옛날에는자기집월동준비만하지않았다. 조선 시대엔 겨울 추위에 떨 노인들에게 기력을 보 강 하 라 고 음 식 을 대 접 했 는 데 이 를 치 계 미 (雉 鷄 米 ) 라고 한다. 꿩 닭 쌀을 뜻하는 치계미는 원래 사또의 밥상에 올릴 반찬값을 가리키는 말로 마을의 노인들 을사또처럼모신다는뜻이다. 살림 형편이 안 되면 미꾸라지를 잡아 노인들을 대 접하는 도랑탕 잔치를 열었다. 선인들은 벼를 추수한 뒤에 논에 떨어진 이삭을 줍지 않았다.입에 풀칠을 하 기힘든누군가의양식으로남겨둔것이다. 조상들은 또 감을 딸 때 겨울에 배를 곯을 까치를 위해 감 몇 개를 남겨두기 까지 했는데 이를 입동 까 치밥 이라고 했다. 입동은 헐벗고 힘든 시절 추위를 더불어 이기고자 했던 절기였던 것이다. 그러나 지 금은 많은 사람에게 마음이 메말라 더 추운 겨울이 아닐까? 까치밥 하나 덩그러니 남기고 마을이 조용 해졌다. 경제 온도가 차가워지고 빈부 격차도 커질 수록 누군가와 함께 온기를 나눠야 덜 추울 것이다. 요즘 너도나도 춥다는 이야기를 먼저 하고 두꺼운 옷을 찾는 모습을 보면서 본격적인 겨울 문턱이 시 작되었음을 느낀다. 이런 모습과 함께 이맘때쯤 많 이 듣는 단어가 있다.본격적인 겨울의 시작을 의미 하는 입동(立冬)이 지났다. 사실 입동이란 용어는 많이 들어 보았지만 그 뜻이 나 유래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드물 것 같다.그래서 입동의 의미와 유래 그리고 겨울철 제철 음식에는 무 엇이 있는지를 알아본다. 입동 시기 24절기 중 19번째 절기인 날부터 겨울이 시작 된다고 하여 이를 입동(立 冬) 이라고 한다. 이때는 태양의 횡경이 225도일 때이 고 양력으로는 11월 7일 또는 8일 무렵 음력으로는 10 월첫서리가 내린다는 상강 후 약 15일 첫 눈이 내린 다는 소설 전 약 15일이 입동에 해당 한다. 풍속은 입동 날을 설날 추석과 같은 특별한 명절로 생각 하 지는 않지만 본격 적으로 겨울로 들어서는 날로 여 겼기 때문에 옛날부터 입동이 되면 사람들은 겨울 채비를 시작 했다. 입동 하면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김장이다. 입동에 맞춰 김장을 담그는 이유는 입동 을 전후하여 5일 내외에 담근 김장이 맛이 좋기 때 문이라고 한다.입동이 다가오면 예전에는 농가에서 고사를 많이 지냈다. 대개 음력으로 10월 10일에서 30일 사이에 날을 받아 햇곡식으로 시루떡을 하고 제물을 약간 장만하여 곡물을 저장하는 곳간과 마루 외양간에 고사를 지냈다. 고사를 지내고 나면 이웃들 과 함께 나눠먹고 농사철에 애를 쓴 소에게 고사 음식 을주기도했다. 또한 입동에는 치계미(雉鷄米) 라고 하는 미풍양속 도 있었다. 원래 치계미란 사또의 밥상에 올릴 반찬값 으로 받는 뇌물을 뜻하는데 마을에서 노인을 사또처 럼 모시고 음식을 대접하며 잔치를 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 온다. 마을에서 아무리 살림이 없는 사람이라도 일 년에 한 차례 이상 치계미를 위해 출연을 했다고 한다. 지역별 입동에는 여러 지역에서 점을 치면서 그 다음해의 운세를 보기도 이다.이를 입 동보기라고한다. 충청도 지역에서는 입동 전 가위보리 라는 말이 전 해 오는데 입춘 때 보리를 뽑아 뿌리가 세 개이면 풍년 이 든다고 점치는데 입동 때는 뿌리 대신 잎을 보고 점 을 친 다 . 보 리 의 잎 이 가 위 처 럼 두 개 가 나 야 그 해 보 리 풍년이 든다는 속설 이 있 다 . 또한 경남의 여러 지 역 에 서 는 입 동 때 갈 까 마귀가 날아온다고 하는 데 특 히 경 남 밀 양 지 역 에서는 갈 까마귀의 흰 뱃바닥이 보이면 이듬해 목 화 농 사 가 잘 될 것 이 라고 점쳤다고 한다. 제 주도 지역에서는 입동 날 날씨가 따뜻하지 않 으면 그 해 겨울바람이 심하게 분다고 한다. 전 남 지역에서도 입동 때 의 날 씨 를 보 아 그 해 겨 울 추위를 가늠하기도 한다. 대게 전국 적으로 입동에 날씨가 추우면 그 해 겨울이 크게 추울 것이라 고 믿 고 있 다 . 입동이 시작 되면서 갑작스럽게 추워진 날씨 탓에 입 맛 이 예 전 같 지 않 은 분 들 이 많 을 것 이 다 . 특 히 나 요 즘 같은 환절기 날씨에는 감기에 쉽게 걸릴 수 있기 때 문에 건강관리도 잘해야 한다. 그래서 입맛도 되살리 고 건강도 지킬 수 있는 겨울 제철 음식에 대해 소개를 한다. 입동이 다가오면 추수한 햇곡식으로 제사상을 차 려 한 해 농 사 를 마 무 리 하 고 감사하는 의미로 말일 이나 길일을 택해서 성주에게 고사를 지냈다. 이 고사 에서 붉은 색이 악귀을 막는다는 설 때문에 팥을 이용 한팥시루떡을만들어올렸다. 신선로는 여러 가지 어육과 채소를 색색 별로 예쁘 게 돌려 담고 장국을 부어 끓이면서 먹는 음식으로 구 자탕열구자탕탕구자라고도한다. 조선시대 연산군 때 한림 호당을 지낸 정희량이 사 화를 겪은 다음 갑자년에 다시 사화가 있을 것을 예견 하고 속세를 피하여 산중에 은둔하여 살 때 화로를 만 들어 거기에 채소를 끓여 먹었는데 그의 가풍이 마치 신선과 같았다 하여 신선로 라고 하였다. 신선로의 맨 밑바닥에는 갖은 양념을 하여 썰어 넣은 쇠고기를 넣 고 그 위에 생선전과 처녑전 간전 미나리 또는 파를 담 고 그 위에 해삼 전복을 얹고 맨 위에 알지단 황백 표 고버섯 석이버섯 붉은 고추 쇠고기 완자 호두 깐 것 은 행볶은것등을색조에맞추어돌려담는다. 이 렇 게 담 은 것 에 쇠 고 기 맑 은 장 국 을 붓 고 중 앙 부 위에 있는 화로에 숯불을 담아 끓이면서 먹는다. 추어 탕 맛도 좋지만 효능이 뛰어나 환절기 보양식으로도 각광 받고 있는 음식 중 하나이다.추어탕은 양질의 단 백질과 비타민A가 많이 들어있어 피부 미용에 뛰어 나고 불포화 지방산 성분이 풍부히 함유되어 있어 콜 레스테롤을 낮춰주기 때문에 성인병 예방에 좋은 음 식 이다. 또한 비타민과 칼슘 단백질이 풍부하며 지방 이 적기 때문에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아주 좋은 음식 이다. 추어탕의 재료인 미꾸라지는 7월에서 11월까지 가 가장 살이 찌고 맛이 좋다고 한다.미꾸라지는 성질 이 따뜻하고 몸을 보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 먹으면 좋은 보양식으로 널 리알려져있다. 입동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 되는데 이 를 때 일수록 건강을 더 챙겨야 하겠다. 즐거운 월동 준비로 건강한 겨울 보내시기 바랍니다.오늘도 행복 한날되소서!!! ■산사의편지븣입동(立冬) 겨울의문턱을넘으며 원경스님 대한불교조계종대종사 평택만기사주지 창간이후꾸준히 좋은글 보내주신 박진석논설위원님에게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