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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어학회 한말글 수호 투쟁기 조선어학회는 일제 식민통치시대 한글학회의 이름이다. 나라의 운세가 막다른 고비에 이르자 우리 말과 글을 지키는 것만이 겨레를 지키고 끝내 독립을 쟁취하는 유일한 길임을 굳게 믿고 1908년 8월 31일 한힌샘 주시경 선생과 그 제자들이 국어연구학회를 창립하였다. 1921년 '조선어학회'로 이름을 바꾸고, '한글날'(1926)을 제정하고 동인지 '한글'(1927)을 간행하면서 국어 연구와 한글 보급 운동을 힘차게 펼쳐나갔다. 1929년 독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이극로가 조선어학회에 입회하여 각계를 대표하는 108인의 뜻을 모아 '조선어사전편찬회'를 조직하면서 민족학회로서의 기반을 확고히 하였다. 1931년 '조선어표준말'을 사정하였으며 1940년 '외래어표기법 통일안'을 제정함으로써 국어는 비로서 문명어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1942년 '조선말큰사전' 출판에 착수하는데, 조선어 사용금지령, 창씨개명등 민족 말살 책동을 노골화한 가운데 이야말로 가장 힘있는 민족운동독립투쟁임을 간파한 일제가 주동 인물들을 치안 유지법위반으로 함흥형무소에 구금하고 더할수없이 모진 고문을 가하였다. 이에 이윤재, 한징 두분이 옥사하고,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정인승, 정태진등이 광복을 맞아 반주검 상태로 풀려나니 이것이 이른바 '조선어학회사건'이다. 이분들의 거룩한 희생이 있었기에 국어는 현대화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교육을 할 수 있었기에 우리는 불과 두세대만에 그 처참한 가난을 극복하고 오늘 선진 경제, 문화강국으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일제 식민통치 아래서 조선어학회의 투쟁이야 말로 가장 성공적이고 빛나는 독립투쟁이라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