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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5 - 화약을 맺은 관군은 몇몇 부대를 전주에 남기고 모두 철군하였고, 동학농민군도 철 군 및 해산했다. 그러나 郡縣(군현)의 행 정이 혼란과 마비상태에 이르자 전라감사 김학진과 전봉준의 상의 끝에 호남지방의 각 군현에 농민자치기구인 집강소(執綱所) 를 설치하기로 했다. 이때 12개 폐정개혁 안을 내걸고 민정(民政)을 실시하였다. 폐정개혁안 12개 항목 ① 동학교도는 정부와의 원한을 일소하고 서정에 협력 ② 탐관오리엄벌 ③ 횡포한 부호를 엄징 ④ 불량한 유림과 양반의 무리를 징벌 ⑤ 노비문서 소각 ⑥ 천인에 대한 대우 개선 ⑦ 청상과부의 개가 허용 ⑧ 무명잡세 일체 폐지 ⑨ 관리채용 시 지벌을 타파하고 인재 등용 ⑩ 왜와 통한 자는 엄징 ⑪ 기왕의 공사채를 무효로 할 것 ⑫ 토지는 평균하여 분작 동학군의 해산에도 불구하고 1차 봉기를 빌미로 조선에 입성한 일본군은 내정간섭 을 강화하였고 6월 2일 김홍집을 앞세운 친일내각을 설립하여 조선정부에 내정개 혁을 강요하였다. 이어 6월 21일에는 경 복궁에 침입하여 고종을 감금하고, 23일 청·일전쟁을 일으킨 후, 25일 1차 갑오개 혁을 강행하였다. 이러한 일본의 행태를 전해들은 전봉준은 일본군 척결을 위해 김학진과 손을 잡고 제2차 기병을 준비, 9월 18일 삼례에서 집결(제2차 삼례봉기)하여 서울로 향했고, 이는 반일감정이 쌓여 있던 충청도, 경상 도, 강원도 등 전국적 항일운동으로 확산 되었다. 민중봉기가 확산되자 정부는 군을 출병시키고 일본에 출병을 요청하여 동학 농민군을 진압하도록 하였다. 이날부터 불이 붙은 동학군의 대세가 전 국적으로 확산되었으며 ‘사람이 곧 하늘’ 이라는 동학사상으로 인간은 평등하다고 주장한 주요인물은 최제우, 최시형,손병희, 박인호였다. 흥선대원군 이하응과 며느리 민자영의 권력 다툼으로 순국한 5대 장군 은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김덕명, 최경선 장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