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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8 - 하게 진압하였다. 그들은 "우리는 제주도 민들이 필요한 게 아니고 제주도가 필요 하다"라고 공언하였다. 미 군정과 이승만 의 단독선거,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민중시위가 계속되었다. 제주도민은 민족 자주 통일 정부의 기치 를 내걸고 학생들과 도민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이승만 정권을 반대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5월 10일 남한만의 단독선 거가 실시되자 제주도 내 2개 선거구에서 투표 미달 사태가 발생했다. 전국에서 유 일하게 선거가 무효화 됐다. 그러나 7월 17일 헌법 제정을 거쳐 8월 15일 이승만 을 대통령으로 하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 립된다. 미국의 지원을 받는 이승만 정권은 단독 정부 수립을 위한 선거를 무효화시킨 제 주 지역에 대한 보복을 시작한다. 4.3 항 쟁을 폭동으로 규정하고 1954년 9월 21 일까지 토벌작전을 계속한다. 그 결과 제 주도민의 10%에 달하는 3만여 명이 희생 당한다. 이승만의 광기였다. 여순 항쟁도 제주 4,3 항쟁의 연장선상에서 발생된 사 건이었다. 여수 주둔 14연대 무장봉기 군인들이 제 주도민 진압을 거부하고 무혈로 여수, 순 천경찰서를 접수하고 자주 통일 정부 수 립을 주장하고 민중들의 동조아래 평화적 인 시위를 벌이자 이승만은 계엄령을 선 포하고 견벽청야작전을 감행하여 2만여명 에 달하는 무고한 양민을 대량학살하였다. 국가보안법의 시초인 반공법의 효시였다. 이어 한국전쟁이 터지고 말았다. 이승만은 도주하기 급급하였고 패주하면서 한강 인 도교를 폭파하고 거짓 방송으로 서울시민 의 발을 묶어놓고 애국지사와 보도연맹원 을 비롯한 민간인을 국가의 공권력을 이 용하여 백만명이 넘는 무고한 백성을 학 살하였다.​ 오호 통재라!​ 어찌 이것을 나라라고 할 수 있으며 지도 자라 할 수 있겠는가! 자신이 권력을 독차 지하기 위해 분단을 획책하고 미군의 개 입을 요청하고 그들에 의해 70년 분단 적 폐를 펴온 이승만은 저승에서라도 편히 지낼 수 없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그를 국 부로 추대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제주 4,3 항쟁을 퇴색시키고 분단을 영구 고착화시켰던 민족의 배반자라 아니할 수 없다. 오늘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4주 년 4.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 4.3의 아픈 역사와 무 고한 희생을 기억하고 아픔을 치유하며, 화해와 상생,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당 연한 의무”, “붉은 동백꽃 만개”, “비극에 서 평화로 나아간 4.3 역사의 힘”을 강조 하였다. 그러나 윤 당선자는 제주 4,3 74주기 추 념식에 최초로 참석하는 데 방점을 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