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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 모였다. 유족과 연대단체피해자 회원들은 알고 싶다 해방공간과 한국전쟁에서 미국과 이승만 정권은 남쪽에서만 100만 명이 넘는 민간 인을 학살하였다. 왜. 무엇 때문에 누구에 게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학살을 하고 시신 은 유기 하였는가를 밝혀주기를 강력히 요구한다.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고 1960년 장면정권이 수립되었다. 유가족들 은 희생자의 명예회복 등을 요구하며 마 침내 같은 해 10월 서울 종로에서 회원 114만명 규모의 전국피학살자유족회가 창 립됐다.유족들은 대통령,국무총리,국회 등 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유족집회 등을 열 어 학살책임자 처벌,유족에 대한 정치경찰 감시해제,위령제,피해보상 등을 요구했다. 이 같은 전국적 활동에 힘입어 제4대 국 회에서 양민학살조사특별위원회( 최천위원 장)가 구성되어 5월31일부터 6월 10일까지 현장을 조사한 뒤 ‘양민학살사건진상보고 서’를 작성해 정부에 제출했다. 확인된 결 과 약 113만 명의 사망자가 신청을 한 사 실이 문서로 밝혀졌다. 그러나 한국전쟁당시 학살된 최초의 진상 조사는 좌절되고 말았다. 지난 1971년 국 방부가 발간한 '한국전쟁사 4'는 1950년 6월25일부터 10월 31일까지 불과 4개월 만에 남한에서만 106만 명의 민간인이 학 살당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바로 5,16 군사쿠데타세력에 의해서다. 유 족회간부를 혁명재판소에 회부하여 구속 시키고 유족회에서 집단매장된 유해를 합 동묘지를 조성하였으나 부관참시하고 연 좌제를 실시하여 유족들을 감시하고 탄압 하였던 것이다. 1971년 국방부가 발간한 민간인학살자료와 비슷한 숫자가 장면정 부와 박정희정권때 발간한 수치가 거의 일치 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 사실 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그동안 민간인학살의 진실은 미군정과 이 승만폭압정권과 박정희군사정권을 거치며 은폐되어왔고 유족들조차 빨갱이로 몰리 며 울음마저 죄가 되는 고초를 겪었기 때문에 잊혀진 진실이 되고 말았다. 대한민국은 밝히기 싫은 진실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패전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민간인학살 사실이다. 전투에서는 무능했 던 군과 경찰은 민간인학살에서는 용감하 였고 극우단체까지 무장을 시켜 민간인을 대량학살하였다. 한국전쟁 전후 벌어진 민간인 대량 학살 사건을 두고 아직도 우리나라는 학살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