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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 - 기습공격을 받고 농민군은 논산으로, 다시 전주로 후퇴했다. 전열을 가다듬어 원평, 태인에서 결전을 벌였지만 역시 패했다. 전봉준은 직속부대만 남기고 농민군에게 해산명령을 내렸다. 곧이어 정부군 측의 소탕작전이 시작되었 다. 이들은 죄없는 양민까지 마구잡이로 체포, 학살하고 마을을 잿더미로 만들었으 며 부녀자를 능욕했다. 백양사에 숨어 동 정을 살피던 전봉준은 정부군이 殺戮(살 육)에 정신없는 틈을 타서 직속부대를 서 울로 잠입케 하고 세 명의 부하와 함께 순창으로 갔다. 일본군은 전봉준을 체포하 기 위해 막대한 현상금을 걸었다. 淳昌(순 창)에서 隱居(은거)하던중 자신의 부하였 던 김경천의密告(밀고)로 체포되어 한양으 로 압송되어 처형되었다. 동학농민군은 치열한 접전 끝에, 우세한 화력을 앞세운 일본의 개입으로 고전하다 우금치전투에서 관군과 일본군에게 패했 다. 이후 1895년 1월 전봉준에 이어 손화 중 등 동학농민 지도부 대부분이 체포되 고 교수형에 처해져 동학농민운동은 실패 로 끝났다. 동학농민군을 비롯한 백성들도 조선관군과 일본군의 소탕작전으로 100만 명 이상이학살당하였다. 조국을 외세로부터 구하기 위하여 봉기한 농민군과 백성들을 일본군을 끄집어들여 자신의 백성을 학살한 조선은 나라가 아 니었다. 황토현의 황토는 백만 농민군의 血淚(혈루)가 분홍 색깔이 되어 그날의 참 상을 말하여주고 있다. 그로인하여 조선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 겼고 36년간의 치욕적인 식민통치를 받았 다. 조국이 해방되고 외세의 힘을 빌려 권력 을 잡은 이승만과 친일세력들이 친미세력 으로 둔갑하여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100 만명이 넘는 민간인과 사상가 민족주의자 를 학살하고 지금까지도 과거사라는 이름 으로 진상을 밝히지 않고 있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 밭에 앉지 마라 녹두 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우리 논에 앉지 마라 새야 새야 파랑새야 우리 밭에 앉지 마라 아랫녘 새는 아래로 가고 윗녘 새는 위로 가고 새야 새야 파랑새야 우리 밭에 앉지 마라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 밭에 앉지 마라 새야 새야 파랑새야 우리 밭에 앉지 마라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 꽃이 떨어지면 새야 새야 파랑새야 우리 밭에 앉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