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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 비각 해설. 향교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 전국의 주,부,군,현 마다 건립되어 교육의 중추적 기능 수행은 물론 지역공동체의 풍속을 순화하는데 기여하여 왔다. 광주향교는 조선 초기 무등산 장원봉 아래에 세웠다가 호환떄문에 동문안으로 옮겼으나 빈번한 수해로 인해, 성종 19년(서기 1488년) 당시 현감 권수평공이 현재의 위치로 옮겨 신축한 후 정유재란에 불타서 개축하고 그후 여러 차례 개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조선시대에는 호남이 인재의 보고라 할정도로 향교를 통해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으며, 향중 유림이 모여 나라의 폐정을 바로 잡도록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고, 임진왜란과 또 을미사변, 을사늑약 당시에는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의병을 규합하는 거점이 되기도 하였던 역사의 현장이다. 향교의 연혁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실려있고 여러 차례 증개축한 이력은 이곳의 비석과, 향교 건물내 현판으로 전하며 모두가 광주향교지에 자세히 실려있어 조상들의 공동체를 지키려는 광주정신의 슬기를 엿 볼 수 있다. 이 비각은 철종 5년 갑인(1854년)에 문묘를 중수하면서 향교 밖에 비각을 마련 모두 7기의 비석을 비각안에 세웠으나 세월이 흘러 비각이 쓰러지고 비석의 머리에는 이끼가 끼고 받침돌에는 잡초가 자라는 지영에 이르자 1935년에 유림들이 성금을 모아 일자 4칸건물의 바각을 새로 마련하고 비석 7기와 곁의 한칸에는 중건기념비를 세웠고, 1976년에 또 유림들이 성금을 모아 문묘의 부속건물을 중수하면서 성금자 방명을 새긴 광주향교중수비가 세워져 모두 9기의 비가 비각안에 들어섰는데, 좌측으로부터 비명과 지은 사람은 아래와 같다. 비석 1호 광주향교중신기(1563년) 본문 ㅣ 고봉 기대승, 음기 : 희재 박광옥 비석 2호 광주향교중수기(1804년) 겸재 기학경 비석 3호 광주향교중수기(1855년) 노사 기정진 비석 4호 광주향교중수기(1882년) 연재 송병선 비석 5호 광주명륜당중수기(1843년) 운석 조인영 비석 6호 광주향교중수기(1893년) 광주목사 민선호 비석 7호 광주향교집강권군일제위성비(1843년) 광주목사 조철영 비석 8호 광주향교비각중건기(1935년) 전 장례위원 박봉주 비석9호 광주향교중수비(1976년) 중수추진위원회 광주향교의 건물내력을 시민들에게 올바로 알리고자 비석마다 비문 해설을 요약정리하여 게시하오니 선조들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보호하여 문화시민의 긍지를 지켜 나갑니다. 서기 2014년 11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