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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백의총. 이곳은 임진왜란 때 조헌선생과 영규대사가 이끄는 의병이 왜군과의 싸움에서 순절한 700의사의 묘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헌선생은 의병을 일으켜 선조25년(1592) 8월 1일 영규대사와 함께 청주성을 수복하였고, 18일에는 호남순찰사인 권율장군이 이끄는 관군과 함께 금산의 적을 협공하기로 약속하였다. 그러나 권율장군은 왜적의 기세로 보아 아군은 중과부적의 열세임을 탐지하고 작전을 바꾸어 기일을 늦추자는 편지를 조헌선생에게 띄웠으나 이 서한을 미처 받아보지 못한 채 출병한 선생의 의병부대는 필사무퇴의 결전을 벌이다 모두 순절하였다. 조헌선생의 제가 박정량과 전승업은 싸움이 있은 4일후 칠백의사의 유해를 한 무덤에 모시고 칠백의총이라 했다. 그후 선조 36년(1603)에 중봉 조헌선생순의비를 세우고 인조 25년(1647)에는 사당을 건립하여 칠백의사의 위패를 모셨다. 헌종 4년(1663) 사당에 종용사라는 사액과 토지를 내렸으며, 대대로 제사를 받들어 왔다. 종용사에는 칠백의사 이외에 금산싸움에서 순절한 고경명선생과 그 막좌 및 사졸, 그리고 횡당촌싸움에서 순절한 변응정선생과 무명의사 등의 위패도 모시고 제향하여 왔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종용사를 헐고, 순의비를 폭파한 후 칠백의총의 토지를 강제로 팔아 경역을 황폐하게 만들어 항일유적지를 말살하여하였다. 광복 후 1952년 군민들이 성금의 모아 의총과 종용사를 다시 지었고, 1970년에 묘역을 확장한 후 종용사와 순의비를 새로 지었으며, 1976년에는 기념관을 신축하여 순절한 칠백의사의 숭고한 호국정신을 이어받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