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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손병희 묘소 이곳은 천도교 제3세 교조이자 3.1독립운동 민족대표 33인의 영도자인 의암 손병희(1861~1922)선생의 묘소이다. 손병희는 충청북도 청주 출신으로, 1882년 동학에 입도한 뒤 2세 교조인 최시형의 수제자가 되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는 통령으로 전봉준과 논산에서 합세하여 호남과 호서를 휩쓸고 북상하여 관군을 격파하였다. 그러나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일본군이 개입하며 혁명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897년 최시형의 뒤를 이어 3세 교조가 된 손병희는 1905년에 동학을 천도교로 이름을 바꾸어 대고천하(세상에 널리 알림)하였다. 종교활동과 함께 교육운동과 독립운동을 활발히 전개하였으며,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이듬해 우이동에 봉황각을 짓고 이곳에서 독립운동의 핵심 역할을 담당할 교역자 483명을 양성하였다. 1919년 3월 1일에는 기독교, 불교와 연합하여 민족대표 33인의 수장으로 우리나라 독립을 선언하고 주도하였다. 독립선언후 일제에 의해 내란죄로 기소된 손병희는 1920년 10월 30일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병보석으로 가석방되어 상춘원(지금의 종로 숭인동)에서 요양하다 1922년 5월 19일에 순국하였다. 1962년에 정부에서는 그희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죽은 뒤 훈장을 줌)하였다. 손병희 묘소는 높다란 언덕위에 자리잡고 있다. 원형 봉분과 양옆과 뒤쪽에 나지막한 담인 곡장을 세웠으며, 봉분 아래쪽에는 천도교 휘장인 궁을장을 새긴 병풍석을 둘렀다. 봉분 앞쪽에는 제물을 차려 놓는 상석, 향로를 올리는 향로석, 한쌍의 망주석, 묘비 등의 석물이 있다. 묘소 오른쪽 아래에 봉황각이 있으며, 왼쪽 숲에는 부인 현풍곽씨와 주옥경의 묘소가 나란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