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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김창숙 묘소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유학자. 교육가.청치가인 김창숙(1879~1962)의 묘소이다. 김창숙은 경상북도 성주 출신으로, 일찍이 이름난 학자들을 찾아다니며 성리학을 익혔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이완용을 비롯해 을사조약에 찬성한 5명의 을사오적을 성토하는 '청참오적소'를 올리고 체포되어 옥살이를 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유교를 믿고 따르는 전국의 유림들과 함께 독립 청원서인 '파리장서'를 작성하여,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파리강화회의와 국내외 곳곳에 보냈다. 1925년부터 만주와 몽골 접경지역에 한인동포들의 집단 거주지를 만들고 독립군을 양성하기 위한 독립기지 개척운동을 펼쳤으며, 1926년에는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부의장으로 선출되었다. 1927년 상하이에서 체포되어 구내로 보내졌고, 14년 형을 선고받아 대구형무소와 대전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했다. 광복된 뒤에는 미군정의 자문기관인 민주 의원에서 의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46년에는 전국의 유림을 결속하여 유도회를 만들어 활동하고 성균관대학교를 세워 초대 학장과 총장을 지냈다. 또한, 김구와 함께 민족 분열을 막으려 남한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하였으며, 이승만 정권 때에는 독재와 부패를 막기위해 투쟁을 벌였다. 1962년 3월 1일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았으며, 5월 10일에 세상을 떠났다. 사회장으로 장례를 치른 뒤 이곳에 묻혔다. 김창숙의 묘소에는 제물을 차려 놓는 상석, 향로를 올리는 향로석, 불을 밝히는 장명등, 한 쌍의 돌기둥인 망주석 등 돌로 만든 석물들이 있으며, 원형 봉분 아래쪽에는 병풍석을 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