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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를 거처서 6개 고을에 출재하였으며 치적이 많았으니 후에 남계사에 제향하였다. 고조의 휘는 석린이고 증조의 휘는 사필이며 조의 휘는 관호인데 호는 천서라 하고 관은 노직으로 통정이다. 고의 휘는 응철이며 호는 윤강인데 사람은 문망으로 추중하였다. 비는 공주 반남박씨로 평도공 휘 은의 후인 정수의 녀다. 공은 1897년 10월 15일에 영주군 이산면 초계리 제에서 출생하였다. 소년 시절부터 기국이 비범하여 향리에서 칭예가 높았으나 일제의 강압으로 뜻을 펴지 못하고 비분강개하다가 1919년 3월 1일 독립을 절규하는 만세소리가 전국에 메아리칠 때 봉화는 동지 박인서가 영도하고 영주 지구는 3월 20일 장날을 택하여 궐기하던 애국 시민들의 독립만세운동을 솔선 지휘하던 공은 흑치 일경에 체포되고 수모자로 경성에 압송 고등법원에서 1년 6개월의 실형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루셨다. 공의 용영하고 과감한 의지와 불굴하고 불요한 기백은 만중에 사자효하면서 시종일관 하였고 광복 후에는 후진을 계도하면서 완연히 불변불당하시다가 1963년 4월 24일에 67세를 일기로 서거하시니 초계 후속 인좌원에 예양하였다. ...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