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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흥망에 필부유책이라는 옛말이 있다. 나라가 외환을 당하였을때 포의의 몸으로 용감하게 일어나서 항쟁의 대열에 앞장서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고을의 농고 오하근공은 바로 그러한 책무를 다한 분이시기에 세월이 흐를수록 고산경앙의 감모가 새로워지는 것이다. 상조의 휘는 학린이며 관은 려조의 한림태학사이다. 누전하야 13세손에 휘 운은 호를 죽용라 하고 조남명과 이퇴계의 문인으로 관은 선조조에 진문하여 부윤에 이르렀으며 남계사와 한천서원에 제향하였다. 생의 휘는 여발이며 호를 결암 또는 남악이라 하고 정한강과 유서애의 문인으로 관은 진문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