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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비문 잠시 걸음을 멈추고 옷깃을 여미자. 우리 고을 천년유택에 잠드신 오하근공은 일제의 사나운 채찍아래 온 겨레가 설움받던 시절 기미독립만세의 우렁찬 함성이 온 나라에 퍼지자 어려서부터 언향문정에 태어나 가슴 가득 끓어오르는 항적의 혈조를 억누를길 없어 영주의 우국청년은 물론 봉화의 박인서동지와 거사를 내약하면서 영주 장날을 택하여 태극기를 높이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외쳐 많은 시민의 호응속 산천도 함께 울려 흔들렸으니 이는 구원한 민족혼의 부르짖음이요 민족정기의 결식이였다. 그때의 공의 나이 스물 셋 그 젊음과 그 의기 실로 하늘을 찌를듯 하였고 공의 거사로 말미암아 우리 고을의 빛이 될 뿐만 아니라 조국광복의 대의를 드높임에 있어서 민족의 자랑인 만세사건으로 일경에 피체되어 1년 6월의 옥고를 치르셨고 1963년 4월 24일 생애를 마치셨다. 부인은 안동권씨시고 3남 2녀를 두어 가문이 번성함은 공의 음덕이 근원깊고 흐름 긴 것을 미루워 알만하다. 이제 육갑을 맞이한 그 유족이 지방유림의 협찬을 얻어 정성을 모아 여기 비갈을 세워 공의 기절을 길이 후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