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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하근 선생은, 경상북도 영주(榮州) 사람이다. 1919년 3월 20일의 영주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그는 광무황제(光武皇帝)의 국장(國葬)에 참례 차 상경하였다가 그곳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목격하고 귀향하여, 평소 친분이 두텁던 봉화군 상운면 내림리(奉化郡祥雲面內林里)에 사는 박인서(朴仁緖)와 연락을 취하면서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그는 3월 20일의 영주읍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사전준비를 하였는데, 그는 영주군을, 박인서는 봉화군 일대를 책임지고 군중을 규합하는 한편, 권태중(權泰中)으로 하여금 태극기 15매를 제작케 하였다. 3월 20일 오후 5시, 그는 어물시장에서, 박인서는 쌀 시장에서, 미리 준비한 독립선언서를 군중에게 나누어주고, 독립만세를 선창하고 시위군중과 함께 시장을 행진하였다. 그러나 이때 긴급 출동한 일본 헌병에 의해 체포되었으며, 이해 4월 16일 대구(大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자료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