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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국사(菊史) 정희면(鄭熙冕) 선생은 1867년 8월 15일 함평 월악에서 태어나셨다.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1453년 계유정난 때 사사된 단종의 충절신 우의정 충장공(忠莊公) 분(苯)의 17대손이고 1592년 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천일(金千鎰)과 함께 진주성을 사수하다가 순절한 선무원종일등공신 신재공(愼齋公) 감(瑊)의 12대손이다. 송사(松沙)기우만(奇宇萬) 선생의 문하생으로 성리학에 전념하여 후학을 양성하다가 1905년 11월 17일 일본이 강제 을사조약을 체결하고 국권을 침탈하자 국권회복을 결심하고 1906년 봄 동문수학한 영광의 김용구(金容球)와 함께 일심계(一心契)를 조직해 동지를 규합하고 장성의 의병장 기삼연(奇參衍) 휘하에 들어가 통문을 작성하여 김형식(金炯植), 박용근(朴溶根) 오태윤(吳泰允), 이영화(李永華), 이종택(李鍾宅)과 함께 의병 수백명을 모집하여 1907년 8월 일본이 남한 대토벌작전으로 영광에 진입할 때 선생은 의병 수백명과 함께 일본군에 맞서 싸워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패하고 말았다. 그 뒤 선생은 체포되어 광주로 이송되었고 1908년 봄 유형 6개월을 언도 받아 옥고를 겪다가 순종황제의 칙명으로 특사되었다. 의병일기로 남관일기(南冠日記)가 있으며 그 뒤 독립을 위해 후학양성과 계몽에 전력하다가 1944년 11월 4일 돌아가셨다. 1990년 8월 15일 정부에서는 그 공훈을 기리어 건국훈장을 추서하고 독립운동사 자료집에 등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