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義兵將 任公 秉國 紀績碑(의병장 임공 병국 기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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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국(任秉國,任珉鎬)는 전라남도 보성(宝城) 출신이다. 당시 보성은 후기 의병운동의 중심지였다. 이곳 의병운동의 양상은 서민중심이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전기 의병운동은 유생들 중심으로 신분차별적 요소가 다분하였으나 후기의병운동기에 이르러서 서민출신 의병장의 출현이 있게 된다. 특히 보성에서는 담살이 안규홍(安圭洪)의 의병운동이 구심점을 이루었다. 임병국은 안규홍 의진에 입대하여 좌우익부장(左右翼副將)으로 임명되었다. 당시 이들 의진의 진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의병장 안규홍(安圭洪), 부장 염재보(廉在輔), 선봉 이관회(李貫會), 좌우익부장 임병국(任秉國)·정기찬(鄭基贊)·장재모(張載模)·송경회(宋敬會),손덕호(孫德浩), 후군 안택환(安宅煥)·소휘천(蘇輝千), 좌우부참모 오주일(吳周一)·나창운(羅昌運), 서기 임정현(任淨鉉), 군수장 박제현(朴濟鉉) 임병국은 이들 지도층 인사들과 함께 1908년 2월 이후 파청대첩(巴靑大捷)·진산대첩(眞山大捷)·원봉산전투(圓峰山大捷)에 참가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8월 순천 병치(順天 峙)에서 일군을 공격하여 전과를 올린 후 보성에서의 의병운동에 한계를 느끼고 고흥(高興)·장흥(長興) 등지로 옮겨 활약하였다. 1909년 7월 일군 부석(富石)대위의 의병의 부모형제를 통한 회유공작 등이 주효하여 안규홍 의진은 일단 해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도중에 지도층 인사들이 거의 체포되었다. 이후 이 지역에서의 의병운동은 종식되고 말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