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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되어 전국으로 파급되어 이러한 의병항쟁에 있어서 여기 잠들어 있는 7의사는 스스로 의병운동에 뛰어 들어 나라를 지킨 구국의 초석이었다. 7의사는 제천의병진으로 참전하여 충주성을 함락하고 위세를 떨쳤으며 수안보싸움에서는 전군장 鄭雲慶(정운경)의 휘하에서 용감히 싸워 전공을 세웠으나 박달재 싸움에서 불행히도 왜적에게 잡히어 1896년 2월 26일 제천 고장숲에서 처형되어 순국하였다. 왜적은 잔인하게도 7의사의 시체에 석유를 뿌려 불태운 시신을 동료 의병들에 의해 남산 후록 갈마골에 합장하니 사람들은 이를 7의사총이라 하였다. 그 7의사는 金用伊(김용이), 金在觀(김재관), 秋聖孫(추성손), 禹在鳳(우재봉), 禹圭夏(우규하), 朴元用(박원용), 吳元龍(오원용)이니 柳麟錫(유인석) 의병장은 손수 제문을 지어 이들의 의로운 죽음을 찬양하고 그 혼백과 가족들을 위로하였다. 금번 제천시 사업으로 순국선열의 묘를 이곳으로 이장하여 정화하는 뜻은 그 선열들이 발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