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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겼도다. 마을마다 기쁜 웃음 送別(송별)은 없어지고. 봄기운 무성하여 桑麻(상마)밭 싹이 트네. 섬 오랑캐 부질없이 노략질 하지 마라. 푸른 하늘 우뚝하게 雲巖碑(운암비)가 서 있도다. 비가 완성되니 임금께서 遺稿(유고)를 보시고 교시하시기를, 그 글을 보고 그 사람을 알았도다. 어려움을 당하였을 때, 용단은 이순신보다 낫고, 변란을 처음 듣고 의병을 일으킴은 고경명보다 우선하도다. 드디어 판중추사와 겸하여 병조판서를 내리시고 시호까지 내리시니 사람들이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지 아니함이 없더라. 미천한 신도 칭찬함이 만의 하나라도 능하지 못함에 송구스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그러나 왜란의 뒤에 중국의 장수들은 모두 돌을 깎아 功(공)을 실어 높게 서로 바라보니 楊鎬(양호)의 비는 漢師(한사)에, 陳磷(진린)의 비는 靑島(청도)에, 吳宗道(오종도)의 비는 沁府(심부)에, 풍중영(馮仲纓)은 陽山(양산)에 새기고, 萬世德(만세덕)은 萊海(내해)의 섬에 새기어 지금 2백 여년에 사람들이 더욱 애석하거늘 하물며 우리 성상께서는 떳떳한 가르침에 나가시고 풍속의 소리를 세워 鉅鹿(거록)(項羽(항우)가 秦(진)을 무찌른 곳)의 남은 생각으로 睢陽(수양)(唐將張巡(당장장순)의 별칭. 安祿山(안록산)과의 싸움에서 웅거한 곳)의 孤忠(고충)을 나타내시어 비로소 장군의 이름이 높은 산과 북두성같이 빛을 다투니 운암의 비는 하늘과 땅 같이 그침이 없고 신의 이름도 어찌 영광이 있지 아니하리오. 原任直閣(원임직각) 尹行恁(윤행임) 撰(찬) 2006년 7월일 후기. 이 비는 원래 임실군 운암면 벌정마을(임진왜란 당시 승전지)에 있었습니다마는 1917~1944년 왜정시 파멸되었고 또한 1965년 담진댐이 완공되어 수몰지역으로 아름과 당시 전적지가 수장되어 호수로 변하였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연멸되어 가는 역사의 사실을 복원하여 후세에 전하고 우리 임실이 충효의 고장임을 재조명하고자 우리 향토회가 주선하고 임실군이 지원하여 여기에 다시 세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