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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선생 시조비 음기 이목은(李牧隱) 선생의 휘는 穡(색)이요 자는 영숙이니 본관은 한사이다. 우리나라 교육진흥에 크게 공헌한 정당문학 찬성사 가정선생의 아들로 1328년에 태어나 고려의 유학의 거두요 성리학의 대 학자며 충신으로 삼은(三隱)중에 한분이다. 14세에 과거에 합격하고 원(元)나라에 들어가 국자감에서 학문을 연구하고 돌아와 농지제도의 개혁 국방계획 교육진흥 불교의 억제등 당면한 여러가지 정책의 시정방안을 건의하고 국정에 힘썼다. 요직의 벼슬을 두루 거쳐 판 문화시중에 이르렀으나 1398년 위하도 회군때 그 세력을 억제하고 기울어가는 고려를 바로 잡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 했으나 결국 이성계(훗날 조선태조) 일파가 세력을 잡게되자 그들에게 국권이 넘어가고 선생은 장단 함창 청주 장흥 여주 등지로 유배생활을 계속하면서 혁명을 반대하였다. 두문동 72인을 비롯한 수 많은 고려의 충신들이 참형 당하거나 은둔하게 되니 선생은 석방 후에 오대산에 들어가 절의를 지키고 조선 태조의 협력요청을 물리쳤다. 서울에 들어 갔을때 태조를 만나게 되었으나 군신의 예를 대하지 않고 친구의 예로 대하여 작별하고 한강 수로의 배를 이용하여 오대산으로 다시 들어갈때 이곳 여강 연자탄(제비여울)에 도착하여 머무는 시간에 태조가 보낸 어주라고 위장한 술을 마시고 배 안에서 갑자기 운을 마쳤으니 이때가 1396년 5월 7일 이었다. 이무렵 선생을 영접 나왔던 제현과 스님들이 그 술을 마시지 말라고 권유하였으나 선생은 나는 명을 의심치 않는다 하였으니 그의 죽음은 오늘까지 영원한 의혹으로 남아있다. 올해는 선생이 가신지 600주가에 해당하며 또한 문학의 해 이기도하다 이에 기념비를 세운다 앞면의 시조에서 백설은 고려란 뜻이고 구름은 이성계 일파를 말하는 것이며, 매화는 고려충신을 의미하는 것이며, 석양은 고려가 다 기울었음을 말 하는 것이다. '고려는 이미 사양진에 들어섰고 이성계 일파의 세력은 살벌하구나 충신불사이군의 육신들은 모두 어디갔느냐 나 또한 망국의 유신이 되어 홀로 서 있으니 갈곳이 어디냐'라는 뜻으로 충절이 그대로 담긴 시조다. 1996년 10월 30일 여주 군민의 뜻을 모아 삼가 이 비를 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