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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팔아 얻은 부귀영화, 을사오적, 정비칠적, 경술구적 구한말 매국조약 체결에 앞장선 조정대신들은 을사5적(1905년 을사조약), 정미7적(1907년 한일신협약), 경술구9적(1910년 '합병'조약)으로 불렸다. 이들은 당시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적으로 질타받았고 이들의 처단을 요구하는 상소가 빗발쳤다. 을사오적을 직접 암살하려는 공격도 잇따랐다. 1906년 2월에 이근태(을사오적중 군부대신)이 저격당했고, 1907년 3월에는 나인영(나철),오기호등이 을사5적 암살계획해 실행하려다 실패하기도 했다. 이완용도 1909년 12월 명동성당 앞에서 이재명의 칼을 맞고 오른쪽 폐를 관통당했지만 목숨은 건졌다. 이재명은 그 자리에서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는데 판사가 배후를 묻자 "이완용을 살해한다 하면 우리 이천만 동포가 모두 찬성치 않을 자 없을 것이오. 오천만 동포 모두가 배후요."라 답변하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그만큼 매국적에 대한 민중의 분노는 뜨거웠다. 매국적들은 예외없이 일제 강점 직후에 '조선귀족'으로 작위를 받았고 거액의 은사공채로 부를 축적했으며, 작위를 세습한 후손들도 대를 이어가며 각종 특권을 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