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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영준(郭英俊)은 1919년 3월 24일 경기도 양평군(楊平郡) 갈산면(葛山面) 양근리(楊根里) 시장에서 장날을 이용하여 이신규(李藎珪)가 주도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여 독립선언서와 격문 수십 매를 시장에 모인 군중에게 배포하고, 1,000여명의 군중을 이끌고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시위 후 체포된 곽영준은 1919년 7월 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고, 동년 10월 23일 고등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었다. 곽영준은 1920년 4월 28일 출옥하여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에서 활동하던 중 동년 7월 양재은(梁在殷) 등과 회합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지원을 위해 독립운동자금의 모집을 위해 활동하다가 다시 체포되었다. 1922년 1월 1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대정8년 제령7호위반 및 강도죄로 징역 7년을 받았고, 동년 3월 29일 공소기각 되었다. 1931년에는 양평군에서 양평농민조합준비회(楊平農民組合準備會)의 지제지부(砥堤支部) 면책임자로 활동하였다. 1932년 이후 양평적색농민조합에서 활동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