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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열은 본관이 문화 유씨로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났다. 고종황제는 일찌감치 유세열의 강직한 성품을 알아보고 병조참판의 벼슬을 내리려고 했다. 유세열은 극구 사양하고 종9품 감리참봉을 잠시 지냈다. 유세열은 여주 ‧ 이천 지역에서 항일의병 투쟁을 이끌며 독립운동을 하였다. 그러다 일본 관헌에 붙잡혀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가까스로 풀려났다. 또다시 의병활동을 하기 위해 첫 이름인 창열을 치열로 바꾸었다가 다시 세열로, 이름을 세 번이나 바꾸었다. 의병대장으로 독립운동을 하던 유세열을 일본 관헌에서 3년동안이나 잡으려고 쫓아다녔지만 잡히지 않자, 50여칸이나 되는 집을 불을질렀다. 그리하여 집을 버리고 일가가 자리잡은 곳이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상계리(지금의 노원구 상계동)이다. 유세열은 상계리에서 농사를 지으며 가난하게 살았으나 언제나 당당하였다. 또한 천문학, 지리학, 음양학 등 학식이 매우 높았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많은 선비들에게 자신이 아는 학문을 가르쳤다. 출처 : 노원뉴스 나우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