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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갈명 고 월파 선생 이태건 공은 한말의 풍운이 격동하든 서기 1885년 11월 1일에 평북 삭원에서 고 이창규 선생의 3남으로 출생하시였다. 선생의 유소 시절에는 향리에서 한학을 수업하시고 20세에 선주사범학교를 졸업하시였다. 대한제국의 국운이 기우러지매 선생은 조국의 독립을 위하야 신명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150인의 동지들과 가치 일제에 항쟁하다가 피체하여 3년간 영어의 고난을 격그시고 출옥 후에도 선생의 백절불굴하는 애국 열성은 의주청년단장으로 독립운동의 청년 인재를 규합하다가 재차 일제 관헌에 발각되여 신의주 형무소에서 2년간의 옥중 생활을 계속하시였다. 그 후 선생은 일제의 혹심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향리 선천에서 시대일보와 조선일보의 지국장으로 또는 기숙교회의 장로로 언론과 종교 양방면으로 투쟁을 계속하시엿다. 선생은 일제의 말기에 잠시 북경으로 피신하셨다가 해방된 조국에 다시 도라오서서 대동단 신문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