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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규(金貞奎)는 함남 함흥(咸興) 사람이다. 1913년 간도 용정촌(龍井村)에서 북장로파 계열의 영국인 목사 박걸(朴傑)이 혼춘(琿春)지회를 설립할 때 참여하여 박태항(朴兌恒)·한수현(韓秀鉉)과 함께 선교활동을 통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며 계몽활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3월 20일 중국 길림성(吉林省) 혼춘지방의 독립만세운동에 있어서 주동자인 황병길(黃炳吉)의 뒤를 이어 연설하고, 시위에 모인 군중 800여명과 함께 큰 태극기를 앞세우고 군중들은 손마다 작은 태극기를 흔들면서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행진하는 시위를 전개하였다. 1919년 9월 11일 노령의 대한국민의회(大韓國民議會) 회장인 문창범(文昌範)으로부터 "국제연맹회의에서 한민족의 독립문제를 논의할 때 세계 각국의 여론을 환기하기 위하여 군중들에 의한 시위를 거사하여야 한다."는 밀서를 받고 고일섭(高日燮)·안태국(安泰國)·김한익(金漢益) 등과 함께 협의하여 대한국민의회 본부에 시위운동 후원자의 파견을 요청하는 한편 시위운동의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등의 활동을 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