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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 질 이분(김창룡)이 인제, CIC 과장한테도 보고를 하지만, 정보국에 보고를 하지만, 이 분 이 대통령에게 직보를 할 수도 있겠군요. 답 뭐, 어느 시기엔가 그렇게 되었어요. 그 이제. 전쟁 전에 머 하지만은 대통령 만나러 가자, 해서 또 우리 다 따라가고 다 그랬어요. 전쟁 전에. 질 김창룡 장군이, 그때는 중령 뭐 이렇게 되시는 분이, 대통령 만나러 가자, 우리 CIC 들, 그러면 몇 분이? 답 장교들 다 가서 같이 사진 찍고 다 그랬어요. 사변 전에. 질 그러면은 제가 궁금한 거는 그러면, 이승만 대통령이 반공에 대해서는 최고? 답 제일 믿는 것이 김창룡이야. 거기다가 이제, 말하자면, 이승만 대통령 반대 세력, 질 아, 전쟁 전에? 답 전쟁 전에. 반대세력도 김창룡 장군이 또, 다 견제를 해줬고. - 1949년 10월 김창룡을 면담한 이승만의 평가와 군검경합동수사대 설치 “김창룡! 그래 참 훌륭한 군인이야 정말 큰일 했어. 참 잘해. 앞으로 나라에 크게 충성할 사람이야.” 이대통령은 이렇게 혼자 말을 한 다음 윤석오〔경무대 비서〕에게 지시했다. “앞으로 김창룡은 경무대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김장흥(경호책임자)에게 일러둬. 나한테 중대 보고를 할 거야.” - 이승만의 지시 - 1950년 7월초, 대전 충남도청 2층 대통령 임시 집무실 김창룡, 당신은 임시 수도가 경남으로 내려 가야할 것 같으니 그곳으로 가서 치안유지를 위해 군경합동수사본부장을 맡으라. - 1950년 7월 초(시기 6월 28일임), 정부가 대전으로 이동하면서 긴급명령 제1호를 공포 하여 비상사태 아래 취한 임시조치로서 군검경합동수사본부를 설치하였다. (『한국전쟁사(제4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