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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젊음을 독립군에 불사르시고 남은 생을 오로지 교육과 연구에 바치신 사적학자가 고이 누워 계시다. 선생은 경기 양평 용평 용문산의 정기를 받아 한말의 풍운 속에 소년시절을 보내시고 잃은 나라 되찾으려 온겨레 일어선 기미의 해 약관의 몸으로 북로군정서의 사관생도가 되사 청산리 전역에 참가 이 년여의 옥고를 격으시고 이후 한글학회 정주 오산학교 서울사대에서 국어학연구와 후진양성에 몸 바치시다가 뜻하신 바 다 이루지 못하시고 세상을 뜨시었다. 고고하신 생애에 빙탄불용의 엄하심이 있오시고 독창성에 차 신학풍은 후지자운(後之子雲)을 기약하시던 뜻 길이 받잡고자 오늘 이 주기를 맞이하여 여기 조찰히 몇 자 새기어 삼가 세우다. 서기 1969년 4월 24일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과 문하생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