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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성(1900~1943), 애국지사 도산의 조카사위(도산의 형인 안치호의 사위). 안치호의 딸 안맥결은 해방 후 경찰관이 되어 서울여자경찰서장(1952)을 지냈다. 김봉성은 1919년 3월 1일 평북 선천군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여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일본으로 유학하여 1922년 주오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27년에는 미국 남캘리포니아대학 경제학과 수학, 1930년 흥사단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1933년 동아일보 선천지국 기자, 1934년 3월 안맥결과 결혼했고 부부는 함께 안창호가 세운 점진학교의 교사로 복무하다 1938년 동우회 사건으로 구속되었다. 김봉성은 1943년 12월 18일 연탄가스 중독으로 딸 자영(묘번 203547)과 함께 사망해 도산의 오른쪽에 잠들었다. 200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2016.4.28,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