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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민 선생의 자는 星極(성극)이요 호는 桂山(계산). 단기 4205년 임신12월 11일 함주군 연포면에서 탄생. 소시부터 면학. 그 뒤 주유천하 하며 산천을 즐기다가 24,5세부터는 영흥군 소재 도안암에서 悟道一昧(오도일매) 한때 三南(삼남)에서 이 암자에 모인 제자만도 수천 명을 헤아렸음. 광무 10년 5월 정3품 통정대부 비서감승에 임명되어 황제로부터 師傳(사전)의 대접을 받았음. 동년 황제의 밀지사건(일인들이 말하는 김승문 사건)으로 말미암아 남대문 일인 감옥에서 1년 반 복역. 동 사건의 탄로로 광무황제는 마침내 양위. 그 뒤 해삼위로 밀항 도중 일헌병에 피체. 다시 함흥옥에서 6개월 복역. 출감 후 만주로 망명. 이후 30년간 북만 일대를 전전하셔 독립군 백여 명과 더불어 광복단장 혹은 대동회장으로서 무력 항일투쟁에 전념. 한편으로는 이민의 권장 후진교육의 개발 독립군의 양성 등에 심혈을 기울이던 중, 단기 4264년 9월경 安圖(안도)에서 흉도의 저격으로 순국. 단기 4301년 독립유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