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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산의원 97년의 역사와 삼산 김병수 선생 삼산의원은 독립운동가이자 의사인 삼산(三山) 김병수가 1922년에 개원했다. 연면적 289.26㎡의 2층 건물로 건축 벽면을 코니스(Cornice) 장식으로 둘러 당시로서는 규모가 크고 파격적이면서도 멋진 건물로 꼽혔다. 1945년 해방 뒤에는 한국무진회사.한국흥업은행.국민은행으로 사용되었는데 지금 왼쪽 벽면에 남아있는 금고는 당시 사용했던 실제 금고이며, 1층과 2층의 유리창은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했다. 2005년 6월 18일에 등록문화재 180호로 지정했다. 김병수(金炳洙, 1898~1951) 선생은 세브란스 의전 재학 중이던 1919년 2월 26일 군산에 도착 영명학원 교사인 박연세 등에게 독립선언문을 전달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 3월 5일 남대문의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이 사건으로 일본경찰에 체포된 후 '보안법위반' 혐의로 약 1년 3개월 동안 옥고를 치른 뒤, 학교를 졸업하고 이리에 삼산의원을 개원했다. 1945년 해방 후 건국과정에서 민족주의 계열로 활발하게 활동했으며, 1947년 초대 이리부윤에 취임하기도 했다.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김병수의 아들 김신기는 익산시 왕궁면에 있는 한센인 마을에서 평생을 의사로 봉직하며 대를 이어 뜻있는 삶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