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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 학생 운동 / 1929년 광주시내에서 항일시위를 벌이는 학생들 3.1운동 이후 국내에서는 민족운동이 활발해졌으며,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민족운동 단체를 조직해 활동했다. 1926년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이 세상을 떠나자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대규모 만세운동을 다시 한번 계획하였으나 지도부들이 검거되면서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예정대로 순종황제의 장례식 6월 10일에 '대한 독립 만세' 소리는 울려 퍼졌다. 어른들을 대신한 학생들의 용기로 이뤄낸 6.10만세운동이다. 6.10만세운동 후, 1929년 광주에서 나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일본 남학생들이 한국 여학생을 희롱하여 일본 학생과 조선 학생들 사이에 대규모 싸움이 발생하였는데 일본 경찰은 조선 학생들만 체포하였다. 이 일은 '광주 학생운동'이 일어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소식을 들은 분노한 학생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시위를 벌였는데 특히 일본 학생들과 크게 충돌했고, 사건을 편파적으로 보도한 〈광주일보〉를 습격하기도 했다. 학생들은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치며 조선인 본위의 교육 제도 확립과 식민지 노예 교육 철폐, 경찰의 교내 출입 반대 등을 요구했다. 이후 여러 사회단체들이 광주 학생 운동의 진상을 조사하고 지원하면서 학생운동은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전국 각지에서는 광주 학생 운동에 호응하는 학생들이 시위나 동맹 휴학이 일어났고, 약 200개 학교에서 5만여 명의 학생들이 참여했다. 이후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을 기념하여 11월 3일을 '학생의 날'로 지정했고, 2006년부터는 '학생 독립 기념일'로 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