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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랑회와 이상운 열사의 투쟁 - 1940년대에 전국적으로 40여 개의 항일학생결사가 있었는데 이 가운데 이리농림학교를 중심으로 결성된 '화랑회'는 재학생인 이상운(李相云)이 동기생인 장지환(張志煥)·김구(金九)·김영준(金英俊)·호중기(扈仲基) 등과 만든 항일 결사대 성격의 무장 투쟁 조직이었고, 1년 동안 120여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45년 5월 17일 23시 김제군 금구면 오산리 '고깔봉'의 금광에서 다이너마이트를 탈취하여 김제경찰서, 금구주재소를 습격하고 주재소에서 보관 중인 무기를 가지고 일본군의 물자수송 경로 차단을 위해 만경강 철교를 폭파하려 했으나 인근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으로 일경이 비상겨에를 펴는 바람에 계획이 실패하고 말았다. 고깔봉 화약고 습격이 미수에 그쳤고 이에 일경은 주동자를 찾기 위해 사건 당일 학교에 결석한 인원들을 확인하여 이상운 등 8명과 항일투쟁으로 퇴학당한 독립당원 5명 등 13명을 구속시켰다. 혹심한 고문으로 이상운은 그토록 원하던 조국의 해방을 한 달도 남기지 않은 1945년 7월 17일에 옥에서 18세의 일기로 순국하였다. 광주 학생 항일 운동에는 광주 지역 학생들의 동아리가 큰 역할을 했다. 1920년대 후반 광주의 고등학교에는 대부분 독서회가 조직되어 있었는데 학생들은 독서와 토론을 통해 제국주의의 문제점과 식민지 한국의 현실을 깨우치고 민족의식을 길렀다. 이들은 광주 지역에서 벌어진 시위에 적극 참여하면서 항일운동의 불을 지피는 데 앞장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