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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가락국 수로왕으로 부터 61세손이신 휘 聲俊 호 청하공께서 만경 평야에 우거한후 우금 400년이라. 공의 후손이 14세손까지 계승되어도다. 과시 유강김문의 개조라 할지어다. 2대 휘 두백은 속칭 十里蘆花不見所(10리 노화북견소)인 만경강유역 이곳에 이거 정착하여 동명을 유천이라 칭하고 초원을 개간하기 시작한후 어언 370여년전 일이라. 유천의 역사를 회고컨대 당시 미개된 사회는 식량 음료수 의복지 등 심한 곤란을 백인자중으로 극복하여 가난을 탈피하려는 자손들이 속출하다. 기중 4대손 응정 조부의 3자 중혁 호 파은재는 온후한 성품으로 수재면학으로 또한 농촌경제등 다변한 인재로 문중 거성이시었다. 그후 상린조의 효행 상련조의 선덕수신 정구조 부인의 효부열사 낙구조의 단아...중략.. 이리함으로 1가문이 화목하고 협조심이 강하야 2세들의 신학문을 훈화키위해서 문중의 뜻을 결합하야 신명학당(현 치문교)을 창설한지 70년이 되였도다. 그 학당을 배움의 전당으로 발전육성시키고 기타 지역 사회사업등 많은 일에 진력한 학구 연식 유촌 준식 어른들의 공로가 컸으며 또한 기미3.1독립만세운동의 선봉자 삼산 병수 3대 민의원 헌식 등 우국지사도 계셨다. 따라서 생존자 중에도 경제학박사 이사관 육군대령 인규계 급 정치 종교 문화사업 실업계등에 많은 인재등이 활약하고 있으니 이 모두가 선영들의 음덕이 아니랴. 향후 자손들은 이 얼을 잘살여서 영광된 유강김문을 영원히 발전시키기에 힘쓸지어다. 1976년 4월 15일 사장 병기근기 홍군표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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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찾으려고 했었던 삼산 김병수 선생의 이름도 찾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