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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실(金涌實/21회, 1943.12.17.~1960.3.15)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성호초등학교(48회)와 마산중학교(8회)를 거쳐 1959년 마산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8남매의 셋째이자 아들로서는 맏이였다. 명랑하며 착실.온건한 성품과 우수한 두뇌, 탁월한 지휘력을 가진 1학년 B반 급장이었다. 1060년 3월 초, 자유당 정권의 부정.불법에 항의하는 마산고 학생 데모 모의를 주도하였으나 데모는 불발하였다. 3월 15일 선거 당일 할머니의 투표권을 누군가가 사전에 행사한 사실을 확인하고 크게 분노하였다. 비장한 결심을 하고 친.인척 집을 들러 일일이 작별인사를 한 뒤 저녁 7시 의거의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그날 밤 10시 무렵 무학초등학교 앞에서 경찰이 쏜 총알이 머리를 관통하여 현장에서 숨을 거두고 도립마산병원에 안치되었다. 그것도 모자라 경찰은 시신이 된 그의 주머니에 '인민공화국만세'와 같은 불온 빠라를 넣고 그를 빨갱이로 몰아 사건을 왜곡하려 하였다. 그러나 양심적인 검사, 올곧은 병원장, 정의로운 간호사들에 의해 불순한 의도는 물거품이 되었다. 흉탄에 쓰러지지 않았다면 나라를 이끌어 갈 동량지재로 성장했을 그는 산화하여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든든한 기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