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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고증 「고병희의 등 6인 판결문」및「고병희 등 5인 판결문」에 의하면,“1927년 4월 9일 밤 제주면 삼도리 김형수의 집에서 회합하고”라 기록된 것으로 보아 대부분의 우리계 모임은 김형수 집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1927년 3-4월경에 고병희·조대수·고영희·강기찬·김형수 5인이 모여 무정부주의 연구 기관인 문고를 설치하고, 1929년 5월 5일에 우의돈목(友誼敦睦), 경조상문(慶弔相問), 생활향상(生活向上) 등의 목적으로 매월 삼원의 조합비를 3년간 거두기로 하고 우리계(宇利契)를 조직하였다. 고병희는 1922년 일본 유학시절 비밀결사인 형설회와 흑도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그는 당시의 사회구조를 파괴하고 지배적 권력이 없는 사회, 또 개인의 절대적 자유가 있는 사회 건설을 이상으로 하는 무정부주의자였다. 1923년에 관동 대지진으로 귀향한 뒤 잡화상을 하면서 뜻 맞는 인사들을 규합했다. 1929년 5월 5일‘우리계’라는 조합을 조직하였고, 무정부주의 비밀결사체로 발전시켜 일본의 통치권을 무력화하여 한국의 독립을 성취하려 했다. 모임은 김형수의 집에서 대부분 이루어졌고, 매달 1회 회합하여 공동연구를 발표하면서 동지를 규합, 조직을 확대하려고 했다. 그러나 일제에 의해 조직이 드러나면서 계원 모두 검거되어 1931년 7월 대구복심법원에서 고병희·조대수는 징역 3년, 고영희·강기찬·김형수는 각각 징역 2년 6개월형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렀다. 1990년 고병희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1993년 김형수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국내독립운동,국가수호 사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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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가 가리키는 곳은 저 에메랄드 호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