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義人 晉州姜公 炳喜之墓 孺人 密陽朴氏 大兒 附左(의인 진주강공 병희지묘 유인 밀양박씨 대아 부좌) 공은 8세 시 나라를 잃었다는 서당훈장의 말에 비분강개했다. 1931년에 일본 독점 이득에 저항하는 도민의 자주운항운동이 일어나 동아통항조합이 조합이 결성되자 익년 강공은 동조합 제주도 출장소장으로써 복목환에 관여할 때 서귀포에 은신 중인 독립운동가 강창보를 몰래 일본으로 탈출하도록 도와 그로써 대구복심법원에서 8년형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당시 재판장에게 일갈한 우정론이야말로 그의 남아 강기에 동지들은 손뼉을 쳤다. 명왈 슬프다. 나라를 되찾겠다던 의인열사의 최후는 무엇인가. 모두 흩어지고 없어졌네. 겨레여 분향하고 잔 부어 고혼을 위로하자구나. 서기 1997년 11월 3일 남당 김찬흡 글, 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