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愛國志士耕史邊舜基先生紀績碑銘幷序 한 점 빛이 온 어둠을 뚫으니 光明(광명)은 값있고 正義(정의)는 私利(사리)를 이겨주니 勝利(승리) 또한 貴(귀)하다. 여기는 湖南(호남) 文鄕(문향) 長城(장성) 땅 일찍이 日帝(일제)의 暗黑(암흑)도 分斷(분단) 속의 私利(사리)도 함께 뚫고 勝利(승리)한 貴(귀)한 님 앞에 온 郡民(군민) 精誠(정성)이 함께 받든 一鄕(일향)의 社會葬(사회장)이 빛났으니 곧 儒林(유림)의 代表(대표)요 愛國志士(애국지사)인 耕史(경사) 邊舜基(변순기) 先生(선생)의 높은 人格(인격) 그 道德光明(도덕광명)이어라. 先生(선생)의 諱(휘)는 舜基(순기), 字(자)는 重華(중화)니 耕史(경사)는 그 別字(별자)이다. 高麗(고려) 泰川伯(태천백) 諱(휘) 呂(려)를 鼻祖(비조)로 落南(낙남) 顯祖(현조) 司正公(사정공) 諱(휘) 靜(정)의 十四代孫(십사대손)이니 一八八四年(1884년) 甲申(갑신) 五月十六日(오월십육일) 考(고) 諱(휘) 雙容(쌍용) 妣(비) 全州李氏(전주이씨) 사이에 長城邑(장성읍) 長安(장안) 本第(본제)에서 出生(출생)하였다. 生來(생래)로 風貌(풍모) 端雅(단아)하고 言行(언행)이 非凡(비범)하니 특히 그 篤實(독실)한 行義凡節(행의범절)이 固執(고집)스러웠다. 少年(소년) 시절 漢文修學(한문수학)으로 四書三經(사서삼경)을 탐독하였으나 밀려 오는 日帝(일제)의 壓迫(압박)으로 祖國(조국)의 命運(명운)이 위급해짐에 과감히 상투를 자르고 開化(개화)의지를 불태워 光州農林學校(광주농림학교)에 入學(입학)하였다. 그것은 保守(보수)의 愛國(애국)으로부터 改革(개혁)의 愛國(애국)으로의 一大轉換(일대전환)이었으니 그 같은 愛國(애국)의 정열은 졸업 후 咸平學校(함평학교)의 訓導(훈도)로서도 愛國啓蒙(애국계몽)을 通(통)한 뜨거운 民族敎育(민족교육)으로 이어졌다. 一九一○年(1910년) 庚戌(경술) 나라가 亡(망)함에 내 어찌 祿俸(녹봉)에 연연하랴하고 敎職(교직)을 버리고 松沙(송사) 奇先生門下(기선생문하)에 入門(입문)하는 한편 光州(광주)로 돌아와 직접 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