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殉國烈士潘公學泳墓碑移設記實碑(순국열사 반공학영 묘비이설 기실비) 반학영열사는 독립운동사자료인 기려수필에 반하경으로 기록되어있어 이 이름이 본명보다 널리 알려졌다. 공은 본관이 남평이요 반씨시조 고려 문하시중 휘 阜(부) 26세손이며 휘 弘濟(홍제)의 차남으로 고종황제때에 1품에 올라 숭록대부지 내시부사를 지내고 1910년 경술국치 일주일안에 활복자결한 순국열사이시다. 열사는 헌종 6년(1840)에 태어나 철종 고종 2대에 걸처 구한말 격동의 역사를 왕실에서 목도하였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관직을 버리고 정경부인 이씨와 함께 파주로 낙향하였다가 끝내 국치를 당하자 파주 삽다리 장터에서 비장한 격문을 내걸고 대한제국 독립을 외치며 활복자결하여 조선인의 항일정신을 만방에 떨치었다. 후사가 없어 뜻있는 이웃에 의해 파주 교하면 신촌리에 장사지내졌고 순국27년만에 옛 동지들이 일제의 감시를 무릅쓰고 비석을 세워 열사의 순국정신을 기리었다. 비문은 합방때 순국한 형조판서 김석진의 아들인 비서원승 안종 김영한이 지었고 비문글씨는 이조판서 해평윤용구가 썼다. 열사의 행적은 당시의 승정원 일기 고종실록및 독립운동혈사 급우재집등에 청렴강개하고 근왕보국하며 순국 사실이 여실히 들어나 있다. 이리한 충절로 1962년에 대한민국정부가 건국공로훈장을 추서하였으며 훈장은 독립기념관에 보존되고 있다. 금년 10월 19일 국가에서 열사의 유해를 대전국립현충원 925호묘역으로 이장하게 되자 남평반문에서는 옛 비석을 장성군 서삼면내 연반씨 세장산으로 이설하여 선열의 위훈을 기리도록 한것이다. 이제 열사의 유해는 국립현충원에 영원히 모시어져 국민의 추앙을 받게되고 묘비는 이곳 반씨 세장선으로 봉안되어 후손의 숭모를 받게되었다. 열사의 그 충렬에 다시한번 옷깃을 여미며 묘비의 이설경위를 여기에 몇자 기록한다. 조선대학교 인문학장 문학박사 반윤홍 근식 2001년 10월 20일 남평반씨 종중 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