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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국비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론이 회자되고 있다. 기삼연 의병대장의 순국비문을 대표적인 친일사학자 이선근씨가 새긴 것으로 뒤늦게 알려져 지역사회를 놀라게 하고 있다. 문제는 이선근이란 사람이 친일행적과 역사 왜곡 만행,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독재 정권에서의 민적정기 말살행위를 수없이 자행한 인물이란 점이다. 이선근(1905~1983)은 경기도 개풍군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와세다 대학에 유학, 그곳에서 조선침략 주창자인 케무야마 교수를 만난다. 이선근은 만주에서 해방을 맞이하고 귀국해서 이승만을 총재로 모시는 대동청년단을 창설, 정치에 뛰어든다. 결과적으로 권력에 빌붙어 1954년에 문교부장관과 국사편찬위원장, 78년에 정신문화연구원 초대원장 등 수많은 직책을 갖고 활동한다. 이와동시에 식민사관 정립을 위해 화랑도연구 등에 몰두하며 박정희와 교분을 넓힌다. 이선근이 저술한 《한민족의 국난극복사》의 마지막에는 “박정희가 국가 비상사태 선언이나 유신을 선포하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무위무능하고 중책을 다하지 못했다고 평가할 것”이라며 ‘10월 유신’을 극찬한다. 그가 남긴 56권의 저서들 대부분 식민사관에 입각한 역사 왜곡이 심하다. 출처 : 장성투데이 2020.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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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백효인 김기선 字 경만 김원봉 字 양백 고정패 이기창 김권현 최정현 변홍연 박만순 송내범 등의 여러 의사들이 선생의 순국후에도 그 뜻을 받드러 각기 분진으로 호남역에서 민족혼의 혈투를 전개하여 수천의 왜적을 도살하였으니 오늘의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선생이 남기신 피의 업적과 유훈은 길이 청사에 빛나고도 남음이 있을것이다. 선생은 일부 막료들과 더불어 1947년에 전북 잔안 이산묘에 배향되었고 1962년에 건국공로훈장의 추증이 있었다. 문학박사 이선근 근찬, 안동 김충현 근서 호남창의영수 성재 기삼연선생 순국기념사업회건립 1966년 병오 9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