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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의 8년 이동기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상화이에서 수립되어 13년동안 활동하다가 대한민국 14년(1932) 4월 윤봉길의거 직후 상하이를 떠났다. 첫 번째로 자리 잡은 곳은 항저우였는데, 김구를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과 가족들은 자싱에서 생활했다. 임시정부는 17년(1935) 11월까지 항저우에서 머물다가 일본의 대대적인 추적을 피해 전장으로 이동한 뒤 난징을 중심으로 약 2년간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19년(1937)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작지에서 활동하던 임시정부 요인들은 잠시 창사에 모여 활동하다가 20년(1938) 7월 광저우로 이동해 동산바이위안에 정식 청사를 마련했다. 중국 최남단에 위치해 일본의 공습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하고 국내 소식을 들을 수 있는 곳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임시정부는 일본군의 기습공격을 받아 광저우에서 약 25km 떨어진 포산으로 이동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서마저 떠나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하지만 100여명이나 되는 임시정부 요인과 가족들의 이동 자금과 교통편을 마련하기가 쉽지않았다. 임시정부는 중국 국민정부에 도움을 청했고, 그 결과 임시정부 요인과 가족들은 싸우이, 류저우 등을 거쳐 21년(1939) 5월 치장에 도착 할 수 있었다. 이곳에 모인 임시정부 요인과 가족들은 모두 107명었다. 22년(1940) 9월에는 임시정부 요인 대부분이 수도인 충칭으로 이동해 27년(135( 환국할 때까지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