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page


207page

서장관(徐壯寬)은 황해도 해주(海州) 사람이다. 1919년 4월 3일 최봉조(崔奉祚)·이진각(李鎭珏)·이용선(李龍善) 등과 함께 가좌면 취야리(茄佐面翠野里) 장날을 이용하여 일으킨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하였다. 이곳은 옹진군 마산면(甕津郡馬山面)과 장연군 모곡면(長淵郡牡谷面) 방면에서 해주로 들어가는 큰길들이 모이는 곳으로서, 교통이 번잡한 곳이다. 4월 3일 오후 2시, 잡화점을 경영하고 있던 그는, 6백여명의 천도교(天道敎)인과 기독교(基督敎)인들이 중심이 된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여 대형 태극기를 휘두르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장터를 행진하였다. 점차 시위군중이 수천명으로 늘어나자, 면사무소와 경찰주재소를 습격하던 중, 출동한 일본 경찰이 무차별 사격을 가하여 수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시위군중은 해산하였다. 그는 결국 체포되어, 해주지방법원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5년형을 받고 고등법원에 상고하여 일제 식민통치와 보안법의 부당성·민족자결주의론을 들어 무죄임을 역설하였으나, 이해 10월 25일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