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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성격이 적극적이시고 의협심이 강하셨으며 체격이 장대하셨던 분으로 1910년 경술국치 후 일제의 식민정책에 울분을 품고 계시던 중 1919년 3월 1일 3.1독립운동을 시작으로 동년 3월 5일 광적면 가남리 속칭 만세답에서 전개된 독립만세 시위에 일장기를 급히 개조하여 태극기를 만들고 부락주민을 동원하여 만세시위에 참가하여 선봉에서 시위를 주도하시던 중 일본헌병과 충돌하여 격투중 적의 총탄에 순국하셨으며 당시 40세로 슬하에 3녀뿐 후사가 無하여 재당질 응옥이 입양 봉사케 되었다. 공과 함께 백남식 김진성공이 순국하였으며 지금 당시 세분의 고귀한 애국정신과 독립만세 역사의 현장을 기년하는 기념비가 가남리에 세워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