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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강순희는 국권회복을 위한 의병활동을 모색하던 중 1907년 7월 헤이그 특사사건으로 광무황제가 강제 퇴위당하고, 「정미7조약(丁未7條約)」이 체결되면서 군대가 강제로 해산됨에 따라 의병전쟁은 한층 더 확대되었다. 군대가 해산되자 군인들은 해산에 반대하여 무기를 들고 격렬한 시가전을 감행하였고, 지방에서도 군인들이 잇달아 봉기하여 의병에 합류하거나 의병을 조직하였다. 이러한 국망사태에서 이강년이 1907년 7월 「정미7조약」에 격분하여 다시 봉기하자, 그는 이강년 의진에 참가하여 문필(文筆)에 관한 일을 맡았다. 이후로 그는 이강년 의진과 함께 종군하면서 문사에 관한 모든 일을 담당하는 한편 전투에 참여하고 보고들은 바를 적어 두었다. 이것이 후에 이강년 의병장의 창의록인 『운강선생창의일록(雲崗先生倡義日錄)』을 저술 편집하는 밑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