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page


92page

강순희(姜順熙, 이명 강대연(姜大淵))은 충북 제천(堤川) 사람이다. 1896년 유인석(柳麟錫) 의진에서 활동하였으며, 1907년 이후에는 이강년(李康秊) 의진에서 사서(司書)로 활약하였다. 강순희는 일제가 1895년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친일정권을 사주하여 단발령과 복제개혁을 단행할 때 국권상실의 위기의식을 절감하고 분연히 궐기하여 유인석과 제천에서 기의하였다. 그 후 그는 유인석 의진을 따라 종군하다가 을미의병이 종결되자 집으로 돌아와서 학문에 열중하였다. 향리에서 은인자중하며 정세를 관망하고 있던 그는 일제가 1905년 11월 「을사륵약(乙巳勒約)」으로 한국 식민지화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보고 일제를 이땅에서 몰아내고 국권회복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통감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1905년 9월 정운경(鄭雲慶) 의진에 참가하였다. 정운경 의진은 단양·제천·영춘·청풍의 4개 군 일대에서 3~4백 명의 의병들을 모집하고, 인근 각지의 지사들과 연락을 취하며 항일 무장투쟁을 준비중이었다. 그러나 전투태세가 정비되기 전에 원주진위대의 불의의 습격을 받고 정운경 의병장이 붙잡혀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