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page


50page

독립유공자 김교영 묘소 소재지 : 경기도 하남시 망월동 280-4
50page

이 곳은 조선후기 통덕랑(通德郞)을 지낸 김성좌(金聲佐)의 후손들이 묻힌 가족묘지이다. 본관은 경주이며, 총 56기의 묘가 있다. 모두가 천주교 신자로서 김우집(金禹集) 김만집(金萬集) 형제가 기해박해(己亥迫害)때 순교하였고, 김문집(金文集)과 그 후손들은 병인박해(丙寅迫害) 때 순교하였다. 이들 가운데 천주교 103위 성인 중 한 사람인 우집은 구산성지(龜山聖地)내에 묘가 있다. 이 가족묘지는 2002년 천주교 양식으로 묘역과 묘비를 새로 단정하였다. 이 곳에 잠들어 있는 김교영(金敎永 : 1857~1923)은 1857년(철종) 구산(龜山)에서 출생하였고 세례명은 요셉이다. 부인은 해주오씨이며 세례명은 마리아이다. 김교영은 1919년 3월 27일 당시 62세로 동부면사무소(현재 하남시 천현동 429-4/6번지)에서 마을 사람들을 모아 만세시위운동을 일으켰다. 다음날에도 수백명의 시위 군중을 이끌고 진두지휘하여 서울로 이동하던 중 동부면 풍산리(속칭 풍산고개)부근에서 헌병대에 체포되어 서울서대문형무소에서 1년 6개월의 옥고를 겪었다. 출소한 후 병마에 시달리다가 1923년 타계하였다. 김교영은 1994년 자주독립과 국가발전에 이바지한 공이 인정되어 건국훈장애족장(建國勳章 愛族章)을 추서받았다. 묘지 앞에 있는 공적비를 2004년에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