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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자료에 의하면 제천시 명지동에 위치한 윤양섭선생의 묘소 재단장하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제천문화원에서는 위치를 알려주는것을 꺼린다. 윤양섭선생은 보훈처 공훈록에서는 찾을 수 없다. 제천문화원은 제천시 명지동 소재하고 있는 윤양섭 선생묘소를 2021년도 2차 의병묘소 새 단장 사업대상으로 선정하고 정비를 마쳤다. 출처 : 충청신문 2021.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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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양섭(尹陽燮 1852~1907) 의병은? 선생의 휘는 陽燮, 자는 敬理, 호는 小白, 본관은 파평으로 1852년 9월 숙종의 문신 尹憲柱의 현손으로 단양에서 출생으며 형 정섭과 함께 한말 대유학자 의당 박세화의 문인이기도 하다. 1896.2월 제천의병진이 중부지방의 요충지인 충주성을 공략할 때 윤양섭은 형 정섭과 함께 힘을 다해 싸웠고 가흥과 수안보의 일본군을 공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적군의 재공격으로 충주성에서 후퇴한 후 곳곳에서 전투를 전개하며 평안도를 거쳐 중국 요동으로 건너가 장기 항전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했다. 그리해 그는 류인석을 수행하여 중국으로 건너갔으며 심양에서 중국 정부와 군사제휴를 협의하는 등 항전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이후 두 형제는 귀국하여 소백산과 월악산을 중심으로 제천, 충주, 단양, 영월, 문경 등지에서 줄기찬 투쟁을 이어 나갔다. 두 형제가 얼마나 치열하게 의병항쟁을 했는지 일제는 당시 단양 상선암 위의 벌천리 궁터골에 있던 기와 전통가옥인 생가를 불 지르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종증손 명근은 증언하고 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으며, 의병투쟁을 이어가던 선생은 1907년 3월 1일 운명했다. 이러한 선생의 충절과 의병항쟁을 기리고 후세에 길이 전하고자 제천문화원에서 2021년 11월묘역을 새롭게 단장하고 제천시민의 뜻을 모아 비석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