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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 남 독 립 운 동 의 기 록 , 1 9 1 0 ~ 1 9 4 5 Ⅱ . 경 남 독 립 운 동 , 조 직 과 활 동 경 남 독 립 운 동 의 기 록 , 1 9 1 0 ~ 1 9 4 5 Ⅱ . 경 남 독 립 운 동 , 조 직 과 활 동 34 35 경남에도 90여 개의 노동단체가 활동했다. 1925년에서 1928년 사이에 가장 많은 노동단체들이 결성되고 노동쟁의 등 노동운동을 전개했다. 노동조합은 마산 14개, 진주 11개 등으로 경남의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었다. 경남의 노동조합은 대체로 잡역인부나 일고(일용직) 노동자들이 중심이 된 토목건축업 계통이 가장 많았다. 이들 노동조합은 노동자 권익 보호는 물론이고 노동쟁의나 파업에 직·간접으로 관여했다. 대표적인 노동운동으로는 1926년 통영 와타나베인쇄소 직공파업, 1927년 마산부두 하역노동자 임금인상 파업 등이다. 1926년에서 1929년 사이 밀양(은산농민조합), 고성(고성농민조합), 동래(일광농민조합, 기장농 민조합), 창원(남면농민조합, 삼진농민조합, 상남농민조합, 웅천농민조합), 진주(일반성농민조합, 진주농 민조합), 함안(함안농민조합) 등지에 11개의 농민조합이 설립되었다. 농민조합은 소작권 보호, 동양척식 주식회사 및 지주 비행 고발, 소작쟁의 공동대응, 조합원 공동구제, 수리조합비 불납운동, 농가원료 공동구입 , 농산물 공동판매 등에 앞장섰다. 또한 순회강연, 운동회, 야학 등을 통해 농민들의 자각과 계몽에 앞장섰다 . 1930년 을 전후하여 혁명적 농민조합이 결성되었다. 김해농민조합은 김해농민연맹을 기반으로 193 0년 10월 결성되었는데, 1931년 진영 하자마(迫間)농장 소작인들의 소작료 인하투쟁을 지원하였다. 노동운동 농민운동 대우개선 요구하며 진해 동양 제사공장 여직공 동맹파업 <여성노동자 300명 참여. 주모자 십여명 피검> (매일신보, 1933. 1. 10.)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임금 요구하며 통영 와타나베 인쇄소 동맹파업 <와타나베 태도 점차 악화. 곤봉으로 노동자 위협. 와타나베는 파업 노동자를 압박하기 위해 면장인 아버지에게 면 수도계 서기인 동맹파업 노동자 아버지 축출 요구. 13일 통영인쇄소 직공친목회는 인쇄소 파업 해결책 위한 임시총회 개최> (시대일보, 1926. 1. 17.)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8시간제 노동과 임금문제 결의 <8월 5일 김해 하계면 주호노농회 제2회 정기회의 개최> (중외일보, 1927. 8. 8.)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양산 농민조합원 300명 경찰서 습격 <16일 농민조합간부 즉시 석방 요구하며 투석 폭행. 발포 해산, 1명 중상> (매일신보, 1932. 3. 18.)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하자마(迫間)농장 소작료 불납투쟁 <하자마(迫間)가 비료대금 소작인 전담 통지. 14일 소작인 153명 비료대금 반분 요구 제출. 24일 류응룡, 허원, 정두칠 등 6명 군수와 서장이 호출 10시간 승강이. 비료대금 반분 결정 않을 시 소작료 불납> (중앙일보, 1931. 12. 28.)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1932년 경남도지사 와타나베 도요히코의 하자마(迫間)농장 순시 기념 사진 「출처 김해시사편찬위원회」